『공제』는 1920년 9월 10일 창간된 초기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의 기관지이다. 제1호와 2호는 간행되었으나, 제3호[1920년 11월]부터 제6호[1921년 3월]는 조선총독부의 간행 불허로 발행이 금지되었으며 그 목차를 제7호[1921년 4월]에 게재하려 하였으나 그마저 삭제 당해 그 목차마저 알 수 없다. 창간호의 편집 겸 발행인은 조성돈, 인쇄인은 최성우, 발행소는 조선노동공제회였다. 1921년 6월 10일[통권 8호]로 종간하였다.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는 1920년 2월 7일 조직된 조선노동문제연구회(朝鮮勞動問題硏究會)를 모태로 하여, 4월 11일 결성되었다. 회장 박중화(朴重華), 총간사 박이규(朴珥圭)를 중심으로 고순흠(高順欽), 윤덕병(尹德炳), 신백우(申伯雨), 김두희〔金枓熙: 김약수(金若水)〕, 정태신[鄭泰信: 정우영(鄭又影)], 차금봉(車今奉), 김명식(金明植), 장덕수(張德秀), 정운해(鄭雲海) 등이 참여하였다. 조선노동공제회의 창립과 동시에 7개의 부서가 마련되었는데 이때 편집부도 설치되어 기관지로서 『공제(共濟)』를 간행하였다. 창간호에 정태신이 쓴 권두일성(卷頭一聲)에서는 “비참, 궁핍, 억색(抑塞), 무지한 암흑에서 신음하는 잔학에 전율하는 다수한 군중의 생활, 이것이 현사회의 속일 수 없는 엄숙한 실상이다”라면서 “대다수, 대민중의 요구와 이상을 표현하는 영롱한 신문명을 수립” 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아! 자유의 서광, 아! 평등의 완성, 이것이 최초의 일성이다. 최후의 일성”이라고 선언하였다.
제1호와 2호는 간행되었으나, 제3호[1920년 11월]부터 제6호[1921년 3월]는 조선총독부의 간행 불허로 발행이 금지되었으며 그 목차를 제7호[1921년 4월]에 게재하려 하였으나 그마저 삭제 당해 그 목차마저 알 수 없다. 창간호의 편집 겸 발행인은 조성돈(趙誠惇), 인쇄인은 최성우(崔成宇), 발행소는 조선노동공제회였다. 제1호와 제2호 발행 시 편집부 구성은 조성돈, 김두희[김약수], 정태신, 남상협(南相協)이었다. 이들은 모두 1920년 5월 조선노동공제회 내에 조직된 주1 크루조크'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공제』를 통해 사회주의사상과 서구 노동운동을 소개하고, 노동문제와 사회주의 문제를 환기하고 선전하는데 주력하였다. 1921년 6월 10일[통권 8호]로 종간하였다.
창간호에는 조성돈이 「노동만능론」을, 남상협이 「노동화하라」, 김명식이 「노동문제는 사회의 근본문제이라」, 무아생(無我生)이 「노동자의 문명은 여사(如斯)하다」, 변희용이 「노동자문제의 정신적 방면」 등 노동 관련 논설을 수록하였다. 또한 정태신이 쓴 「구미노동운동사」는 이후 연재되었다. 나경석도 「세계사조와 조선농촌」, 「러시아의 교육과 열국(列國)」을 게재하였다.
제2호에는 이인탁(李仁鐸)의 「공산주의의 선전」, 유진희(兪鎭熙)의 「노동문제의 사회주의적 고찰」 등 사회주의적 색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논설이 실렸고, 김두희의 「전후 세계대세와 조선노동문제」, 김광식(金廣植)의 「세계개조와 노동문제」, 안확(安廓)의 「유식계급에 대하여」 등 세계정세 변화와 노동문제를 연결시켜 살펴본 논설도 등장하였다. 남상협이 「노동문제 상조론자에게」, 제관(霽觀)의 「검열관의 허가를 득하여 조선노동자제국에게 격을 송하노라」, 농부 명의의 「조선노동계에 고하노라」라는 조선 노동운동 전개의 필요성과 노동계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들도 수록되었다.
제3호에서 6호가 조선총독부의 압수로 간행 금지된 이후, 1921년 4월에야 제7호가 간행되었다. 제1호와 2호의 편집부원이었던 김약수, 남상협이 제3호부터는 편집부에서 물러났고, 여환옥(吕煥玉), 이견익(李堅益)이 편집부에 합류했다. 조성돈은 2호 이후 일제에 구금되었다가, 1921년 3월에 석방되어 재차 합류했다. 제7호에 이르러 편집부는 조성돈과 여환옥, 이견익, 유진희, 신백우(申伯雨) 5인으로 구성되었다. 편집부원이었던 정태신의 사퇴와 유진희와 신백우가 합류한 시점은 확실하지 않다. 제7호에는 신백우가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가 「유물사관 개요」로 번역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과 해설을 수록했고, 이견익이 「노동의 해방」, Y생이 「노동가치설연구」 등 사회주의 논설이 게제되었다. 「농촌과 노동문제」, 「노동조합의 교육적 의의」 등 농민 노동관련 논설도 게재되었다. 전체적으로 수록 글이 이전 호들에 비해 약간 줄어들었다.
1921년 6월에 간행된 제8호에는 신백우가 「계급사회의 사적 고찰」, 이견익이 「노동문제는 인류전체의 문제」, 무아생(無我生)이 「노동문제의 요체」, CK생이 「불란서의 C · G · T와 노동운동의 종국」, 이동식(李東植)이 「무산계급의 자조적 방책」 등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관련 글들이 수록되었다. 또한 조선노동공제회가 1921년 7월부터 소비조합을 설치함에 따라 윤필병(尹畢炳)의 「소비조합의 사회적 의의」 논설이 게재되었다. 8호 말미에는 9호의 중요 내용을 예고하는 안내 글이 실렸다. 여기에는 유물사관과 사유재산의 기원과 같은 사회주의 이론 문제, 사회주의의 소개, 중류계급들의 몰락 등에 대한 글들이 예고되었으나, 결국 간행되지 못하였다.
『공제』 필진 중 유진희, 김명식, 장덕수, 변희용, 나경석 등은 1920년 6월 서울에서 ‘사회혁명당’를 결성하고, 1921년 5월 상해파 공산당 결성에 합류하여 상해파공산당 국내부로 활동하던 인물들이다. 그 외에도 필진 중 상당수가 이후 사회주의운동에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