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민족운동가.
이칭
송산(松山), 솔뫼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0년(고종 27)
사망 연도
1943년
출생지
제주도 조천
주요 경력
조선유학생학우회 간사부장|동아일보 논설위원|신생활 주필|조선노동공제회장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1999)
관련 사건
신생활사 필화사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명식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며 유학생 운동에 참가하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 주필과 논설반원으로 활약하였다.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다가 신생활사 필화사건으로 투옥되었다. 1920~1930년대 사회운동, 한국사, 문예운동 등에 관한 논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1928~1936년 일본 오사카에 체류하며 재일조선인 운동에 관여하였다. 중일전쟁기에는 일본의 정책에 기대를 걸고 조선의 지위 향상을 꾀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민족운동가.
인적 사항

김명식(金明植)은 1890년 제주도 조천에서 태어났다. 1908년 대한협회 제주지회에 고향 후배 김문준과 함께 입회하였다. 같은 해 서울 한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고 동향 후배인 고순흠과 함께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제주도로 돌아갔다. 1915년에 일본에 건너가 1918년까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치경제과에서 수학하였다. 재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에서 활동하며 기관지 『 학지광』에 몇 편의 시와 논문을 기고하였다. 1917년에는 학우회 회장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사상

1916년 봄 장덕수김철수 등과 함께 비밀결사 신아동맹단(新亞同盟團)에 참여하였다. 신아동맹단은 국내로 거점을 옮겨 사회혁명당을 조직하였다. 『 동아일보』 주필과 논설반원으로서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다수의 글을 기고하였다. 『동아일보』에 1921년 6월부터 8월에 걸쳐 연재한 「니콜라이 레닌은 어떠한 사람인가」는 한국에 소개된 최초의 레닌 일대기이다.

1921년 5월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이 창립되자 사회혁명당은 그 국내 지부로 전환하였고 김명식은 내지 간부 가운데 일인으로 선정되었다. 조선노동공제회조선청년연합회에서 활동하며 기관지 『공제』와 『아성』에 다수의 글을 발표하였다.

1922년 1월 장덕수와 『동아일보』가 중심이 되어 김윤식 사회장을 주도하는 데 반대하여 동아일보사를 퇴사하고 ‘평민문화의 건설을 제창’하는 신생활사를 조직하였다. 잡지 『 신생활』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 선전에 주력하였다.

1922년 11월 발행한 『신생활』 러시아혁명 5주년 기념호가 문제가 되어 같은 해 12월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자 재판이 열렸다. 김명식은 1923년 1월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7월 형 집행정지로 출옥하나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청각을 잃고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여러 잡지에 사회운동 관련 글을 발표하였다.

1927년에는 신간회를 ‘상층연합’으로 비판하고 창립에 반대하였다. 1928년 병 치료를 위해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재일조선인 사회운동에 관여하였다. 1930년 6월 다시 검거되어 오사카형무소에서 신생활 사건 잔여 형기를 복역하였다. 1935년 오사카에서 김문준이 창간한 『 민중시보』 발행을 도왔다. 조선의 잡지와 신문에도 활발하게 글을 발표하였다. 일본의 ‘문화정치’와 산업화 정책으로 조선 민중의 고통이 가중되는 현실을 ‘비식민지화’라는 개념으로 포착하여 비판하였다. 조선 연구에도 관심을 보여 단군신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민족을 근대의 산물로 설명하였다. 1936년 ‘관의 명령’으로 귀국하였다.

중일전쟁기에는 일본의 정책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1939년 1월 잡지 『 삼천리』 특집 「동아협동체와 조선」에 인정식, 차재정과 함께 집필하였다. 이후 일본이 내건 ‘동아신질서’, ‘내선일체’라는 정책을 이용해 조선의 지위 향상을 꾀하자는 주장을 폈다. 1940년 무렵 제주도로 돌아가 1943년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논문

홍종욱, 「1930年代における植民地朝鮮人の思想的模索 -金明植の現實認識と轉向を中心に-」(『朝鮮史硏究會論文集』 42, 2004)
박종린, 「꺼지지 않은 불꽃, 송산 김명식」(『진보평론』 2, 1999)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