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봉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 · 독립운동가.
이칭
주서(周瑞)
근전(槿田)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1년
사망 연도
1944년
본관
풍산(豊山)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
주요 경력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2005)
관련 사건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내용 요약

김재봉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3·1운동 후 서울에서 『만선일보』 경성지사 기자로 있으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안상길과 만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3월 징역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 · 독립운동가.
가계 및 인적 사항

김재봉(金在鳳)은 1891년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읍 오미마을 양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주서(周瑞), 호는 근전(槿田)이다. 1909년 광명학교(廣明學校)를 다녔고, 서울로 올라와 1911년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12년 경성공업전습소에 입학하여 1914년 졸업하였다. 고향에 돌아와 1917년 오릉학술강습소(五陵學術講習所)를 세워 청소년 교육에 앞장섰다.

주요 활동

3‧1운동 후 서울에 올라가 『만선일보』 경성지사 기자로 있으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안상길과 만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3월, 징역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10월 주1(Улан-Удэ, 울란우데) 고려공산당 통합 대회에 참여하였고, 대회가 결렬되자, 치바에서 열린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대회에 참여하여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1923년 2월 코민테른 지시로 블라디보스토크에 결성된 고려총국의 국내 파견원으로 서울에 귀국하였다. 3월 중립당, 북성회파 등과 연합하여 고려총국 국내부를 비밀리에 결성하고 책임비서에 선임되었다. 7월 신사상연구회(新思想硏究會) 결성에 참여하였고, 청년 단체 및 노동 단체의 통합에 주력하였다. 1924년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서울파 등과 조선공산당 창립을 위한 ‘13인회’를 구성하였으나 협상이 결렬되어 실패하였다. 10월 ‘ 정재달(鄭在達)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곧 석방되었다.

공산주의 비밀결사 확대 중립당 그룹을 이끌면서 1924년 11월 합법 사상단체인 신사상연구회를 전국 조직인 화요회(火曜會)로 확대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25년 4월 북풍파와 연합해 조선공산당을 결성하였다. 김재봉은 제1대 책임비서에 선임되어 조직 확대 및 여러 활동을 주도하였다.

1925년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이 일어나자 후계당의 책임비서로 강달영(姜達永)을, 권오설(權五卨)고려공산청년회(약칭은 공청) 책임비서로 임명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하였다. 그 직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6년 6월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이 일어나자 7월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심리를 받았다. 1928년 2월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고 1931년 11월에 출옥하였다. 1944년 3월 수감 생활에 따른 건강 악화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피의자 김재봉 신문조서」(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단행본

이준식, 『조선공산당 성립과 활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임경석, 『초기 사회주의운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김희곤,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경인문화사, 2006)
주석
주1

러시아 부랴티야 공화국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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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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