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권오설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1922년 풍산청년회, 1923년 풍산소작인회 결성을 주도하였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에 참가하여 상무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창립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 겸 조직부 책임자가 되었다. 1926년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가 되어 조직을 재건하였다. 6‧10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거사 직전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풍산소작인회 대표 자격으로 서울로 올라와서 신흥청년동맹과 한양청년연맹의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비밀조직인 코민테른 고려총국 국내부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합법 사상단체인 무산자동맹회와 화요회, 혁청단(革淸團), 불꽃사〔火花社〕 등에 참여하였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에 참가하여 상무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12월 남부지방을 순회하며 조직을 확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인쇄 직공조합 조직 결성과 파업에 참여하였고, 전차 승무원 파업과 양화직공 파업 등에도 관여하였다. 1925년 1월 안동의 사상단체 화성회(火星會) 결성에도 관여하였다.
1925년 4월 조선공산당 자매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창립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 겸 조직부 책임자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 신의주사건으로 조선공산당 조직이 와해되자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가 되어 조직을 재건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국장일에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조선노농총동맹과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중심으로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천도교 구파와 함께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거사 직전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930년 4월 17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피의자 권오설 신문조서」(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실, 『권오설』 1~2,(푸른역사, 2010)
단행본
- 김희곤, 『경북을 독립운동의 성지로 만든 사람들』(선인, 2015)
- 이준식, 『조선공산당 성립과 활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논문
- 전명혁, 「6·10만세운동 시기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동맹의 활동」(『역사학연구』 58, 2015)
- 김희곤, 「안동 가일마을 사람들의 항일투쟁」(『지방사와 지방문화』 15, 2012)
- 장석흥, 「권오설의 민족운동 노선과 성격」(『한국근현대사연구』 19,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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