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 ( )

근대사
단체
미주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단체.
이칭
이칭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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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미주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단체.
설립목적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민족혁명당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고 미주 내 선전 및 외교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 이후 미국 본토의 한인들은 중국인의 대일전 승리를 기원하며 1937년 9월 12일 뉴욕한인연합중국후원회를 필두로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지에 중국후원회를 결성하였다. 특정 목적을 위해 한시적으로 결성된 각지의 중국후원회는 일화배척운동과 의연금 모금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8년 10월 한구(漢口)에서 조선의용대 창설 소식을 듣자 각지의 중국후원회는 조선의용대 후원을 위한 의연금 모금활동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조직도 1939년 8월 27일 로스앤젤레스의 한인들에 의해 중국후원회를 해소하고 조선의용대미주후원회연합회의 설립을 대외에 공포하였다. 각지의 중국후원회는 1940년 4월 로스앤젤레스의 조선의용대미주후원회연합회로 결집하였다.

조선의용대미주후원회연합회는 자체 회관으로 의용관을 확보하고 기관지로 『의용보』를 발간하였으며, 반일시위운동과 반일선전활동 그리고 재정모금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런데 중경(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2년 4월 조선의용대를 광복군으로 합편할 것을 결의하고 그 해 5월 광복군 제1지대로 편제하였다. 그 후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있던 민족혁명당은 동년 10월 의정원 의원선거를 통해 중경 임정에 합류하여 마침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의 연합정부로 발전하였다.

중경 소식을 통해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끄는 광복군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접한 조선의용대미주후원회연합회는 1942년 6월 30일 자체를 해소하고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를 결성하였다. 새 단체의 결성은 과거 군사운동만을 후원하는 성격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민족혁명당의 주의와 정책을 적극 따르고 후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의 초창기 구성은 회장(또는 위원장) 변준호, 총무 김강, 서기 곽림대, 재무 황성택·이득환, 정치부 신두식, 선전부 정득근, 조직부 최능익, 감찰 현철·김혜란·황제넷, 사교부 유계상·곽애나·송종운·이마리아 등이었다. 대부분은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북미총지부의 결성에 자극을 받은 하와이 내 진보적 한인들은 1943년 7월 16일 호놀룰루에서 조선민족혁명당하와이총지부를 결성하였다. 조직 구성은 위원장 민찬호, 총서기 현순, 기록서기 이정근, 조직부장 박상하, 부원 최정곤·전형균, 선전부장 홍치범, 부원 정인수·정윌라, 재무부장 김영선, 부원 신세라·오창익이었다. 집행위원은 민찬호·현순·문또라·김이제·신세라·박상하·홍치범·홍한식·김영선이었고, 후보집행위원은 손창희·오창익·이병선이었다. 감찰위원은 천진화·양흥렵·이정근이고, 후보감찰위원은 문인화였다. 1944년에 6월 사교부를 신설하고 부장 문또라, 부원 홍숙자·홍애경·한현신을 선임하였다. 1945년 1월 김이제를 위원장으로 하는 새 집행부를 구성했으나, 그 외 인적 구성은 이전과 차이가 없었다.

조선민족혁명당 미주(북미·하와이)총지부는 1944년 4월 중경에서 개최된 제8차 당대표대회에서 공식 추인되었다. 기본강령과 투쟁강령은 모두 중경의 민족혁명당의 노선을 따랐다. 주요 활동은 그 전신인 중국후원회와 조선의용대미주후원회의 사업을 계승해 민족혁명당에 대한 자금원조와 군사운동을 위한 군사금 모금활동 등에 주력하였다. 북미총지부는 결성 초기 『민족전선』이라는 소규모 기관지를 한 달에 두 차례씩 발행하다가, 1943년 10월 6일 『독립』신문을 확대 발간하고 기관지로 삼았다. 『독립』은 처음 격주간으로 발행되다가, 주간신문으로 자리 잡고 1955년까지 발행되었다.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1944년 4월 독자적인 외교를 위해 워싱턴사무소 설치를 강행하자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와 함께 그동안 공동 전선을 펼쳐왔던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탈퇴하였다. 그런데 이 탈퇴과정에서 북미총지부는 곽림대(郭林大)를 중심으로 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참여파와 변준호를 중심으로 한 탈퇴파로 분립하였다. 1945년 1월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변준호를 중심으로 한 탈퇴파는 신두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새 집행부를 출범시켰고, 중경의 조선민족혁명당은 같은 해 3월 새 집행부의 조직을 인가해 주었다. 그러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참여파들은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의 명칭을 유지한 채 중경의 조선민족혁명당과 단절하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공동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참여파는 곧 재미한족연합위원회로 합류함으로써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는 참여 반대파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독립』이 폐간되는 1955년 무렵까지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는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는 강력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미국 내 사회·공산주의적 성향을 대변함으로써 재미한인사회의 진보적인 단체로 자리 매김하였다.

기능과 역할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된 독립운동 단체로, 중경 임정을 지지하였으나 임정 내 야당세력인 민족혁명당을 후원하고 지지함으로써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미주한인사회에 새로운 정치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참고문헌

『독립』;『신한민보』;『국민보』
『자주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한인의 꿈과 도전』(홍선표, 연세대학교출판부, 2011)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강만길, 화평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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