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불평등"
검색결과 총 7건
1876년(고종 13) 8월 24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조약, 1876년 2월 3일)를 보완하기 위해 조인된 조약.
조일수호조규부록 (朝日修好條規附錄)
1876년(고종 13) 8월 24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조약, 1876년 2월 3일)를 보완하기 위해 조인된 조약.
1876년 8월 24일 조선정부 대표 조인희(趙寅熙)와 일본정부 대표 미야모토[宮本小一] 사이에 체결된 통상장정(通商章程)이다. 전문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무역규칙」은 제1칙에서 입항수속, 제2 · 3칙에서 수입화물의 통관 및 검사, 제4 · 5칙에서 출항 수속, 제6칙에서 미곡류 수출입의 인정 등을 규정하고, 마지막 제11칙에서 무역규칙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였다. 양미(糧米)와 잡곡의 수출입량에 대한 제한 및 관세 규정이 부재(不在)하여 일본의 무제한적인 경제적 침략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 불평등조약이다.
조일무역규칙 (朝日貿易規則)
1876년 8월 24일 조선정부 대표 조인희(趙寅熙)와 일본정부 대표 미야모토[宮本小一] 사이에 체결된 통상장정(通商章程)이다. 전문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무역규칙」은 제1칙에서 입항수속, 제2 · 3칙에서 수입화물의 통관 및 검사, 제4 · 5칙에서 출항 수속, 제6칙에서 미곡류 수출입의 인정 등을 규정하고, 마지막 제11칙에서 무역규칙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였다. 양미(糧米)와 잡곡의 수출입량에 대한 제한 및 관세 규정이 부재(不在)하여 일본의 무제한적인 경제적 침략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 불평등조약이다.
제물포조약은 1882년(고종 19) 8월 30일(음력 7월 17일) 임오군란으로 빚어진 양국 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다. 임오군란으로 일시 패퇴했던 일본은 다수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제물포를 거쳐 한성에 들어와 임오군란 관련자 처벌, 피해보상, 사죄 등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동시에 일본의 상권을 확고히 다지는 수호조규속약도 체결하였다. 공사관 수비를 위해 1개 대대를 한성에 주둔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임오군란으로 3천 명의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는 가운데 일본군까지 주둔하게 되면서 양국간 무력충돌의 위험이 증대되었다.
제물포조약 (濟物浦條約)
제물포조약은 1882년(고종 19) 8월 30일(음력 7월 17일) 임오군란으로 빚어진 양국 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다. 임오군란으로 일시 패퇴했던 일본은 다수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제물포를 거쳐 한성에 들어와 임오군란 관련자 처벌, 피해보상, 사죄 등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동시에 일본의 상권을 확고히 다지는 수호조규속약도 체결하였다. 공사관 수비를 위해 1개 대대를 한성에 주둔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임오군란으로 3천 명의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는 가운데 일본군까지 주둔하게 되면서 양국간 무력충돌의 위험이 증대되었다.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개항장 (開港場)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한성조약은 1884년(고종 21)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뒤처리를 위해 1884년 11월 24일에 조선과 일본 간에 체결된 조약이다. 청나라 군대의 도움으로 갑신정변을 진압하고 권력을 잡은 민씨정권은 정변에 개입한 일본에 항의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청나라가 압도하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조선 정부의 사죄와 공사관 소각에 대한 배상금, 희생자에 대한 구휼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병력과 군함을 파견하였다. 일본의 이러한 무력을 앞세운 교섭으로 5개 조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와 대등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한성조약 (漢城條約)
한성조약은 1884년(고종 21)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뒤처리를 위해 1884년 11월 24일에 조선과 일본 간에 체결된 조약이다. 청나라 군대의 도움으로 갑신정변을 진압하고 권력을 잡은 민씨정권은 정변에 개입한 일본에 항의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청나라가 압도하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조선 정부의 사죄와 공사관 소각에 대한 배상금, 희생자에 대한 구휼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병력과 군함을 파견하였다. 일본의 이러한 무력을 앞세운 교섭으로 5개 조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와 대등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사회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구성체이자 공동생활 과정에서 생겨난 집합적 질서이다. 사회를 보는 관점은 사회의 실재를 둘러싸고 명목론과 실재론으로 나뉘고, 또한 사회 질서의 본질을 둘러싸고 기능론과 갈등론, 관념론과 물질론이 나뉜다. 사회에 대한 사회 과학적 관심은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거쳐 근대사회가 성립된 이후 등장했다. 한국의 사회는 유교 중심의 농업에 기반한 전통사회가 조선 멸망과 함께 붕괴되고 일제시대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해방 이후 산업 기반의 근대사회로 바뀌고, 세기가 바뀌면서 글로벌 탈근대적 사회로의 변화를 겪고 있다.
사회 (社會)
사회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구성체이자 공동생활 과정에서 생겨난 집합적 질서이다. 사회를 보는 관점은 사회의 실재를 둘러싸고 명목론과 실재론으로 나뉘고, 또한 사회 질서의 본질을 둘러싸고 기능론과 갈등론, 관념론과 물질론이 나뉜다. 사회에 대한 사회 과학적 관심은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거쳐 근대사회가 성립된 이후 등장했다. 한국의 사회는 유교 중심의 농업에 기반한 전통사회가 조선 멸망과 함께 붕괴되고 일제시대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해방 이후 산업 기반의 근대사회로 바뀌고, 세기가 바뀌면서 글로벌 탈근대적 사회로의 변화를 겪고 있다.
계층(階層)은 경제적 부나 권력, 사회적 위신과 같이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자원에 따라 사회 구성원을 구분하는 위계적 집단이다. 계층 개념과 유사한 개념으로 계급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뚜렷한 구분 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때, 계층은 다양한 차원에 기반하고 경계가 비교적 불명확한 집단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계급은 경제적 차원에 기반하여 뚜렷하게 구분되는 집단을 기반으로 한다.
계층 (階層)
계층(階層)은 경제적 부나 권력, 사회적 위신과 같이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자원에 따라 사회 구성원을 구분하는 위계적 집단이다. 계층 개념과 유사한 개념으로 계급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뚜렷한 구분 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때, 계층은 다양한 차원에 기반하고 경계가 비교적 불명확한 집단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계급은 경제적 차원에 기반하여 뚜렷하게 구분되는 집단을 기반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