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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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삼은 릴리프 기법, 반전 인화 기법 등을 통해 실험적 사진 세계를 구축한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 도쿄의 고니시로쿠사진전문학교에 입학해 사진을 배웠다. 1925년 평양에 삼정사진관을 개업하였고, 1930년에는 조선일보 후원으로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1·4후퇴 당시 남하하여 서울에 정착하였으며, 대한사진예술연구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50~1960년대에 릴리프 기법, 반전 인화 기법 등을 통해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구축하였다.
서순삼 (徐淳三)
서순삼은 릴리프 기법, 반전 인화 기법 등을 통해 실험적 사진 세계를 구축한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 도쿄의 고니시로쿠사진전문학교에 입학해 사진을 배웠다. 1925년 평양에 삼정사진관을 개업하였고, 1930년에는 조선일보 후원으로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1·4후퇴 당시 남하하여 서울에 정착하였으며, 대한사진예술연구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50~1960년대에 릴리프 기법, 반전 인화 기법 등을 통해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구축하였다.
서순삼예술사진전람회는 1931년, 평양의 삼정사진관이 주최하고 조선일보 평양지국이 후원하여 한국사진 역사에서 두 번째로 개최된 서순삼의 제1회 개인사진전이다. 서순삼의 수십 년간의 역작 40여 점과 함께 서울의 한국인 사진사들의 단체인 '경성사진사협회'에서 10점, 진남포의 '옥(屋)사진관'에서 30점을 찬조 출품하여 총 80여 점의 연합전 형태로 치러졌다.
서순삼예술사진전람회 (徐淳三藝術寫眞展覽會)
서순삼예술사진전람회는 1931년, 평양의 삼정사진관이 주최하고 조선일보 평양지국이 후원하여 한국사진 역사에서 두 번째로 개최된 서순삼의 제1회 개인사진전이다. 서순삼의 수십 년간의 역작 40여 점과 함께 서울의 한국인 사진사들의 단체인 '경성사진사협회'에서 10점, 진남포의 '옥(屋)사진관'에서 30점을 찬조 출품하여 총 80여 점의 연합전 형태로 치러졌다.
예술사진은 서양의 픽토리얼리즘사진을 번역한 용어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경 사이 다양한 공모전이나 개인전에 출품한 사진 전반을 지칭한 사진의 장르이다. 일제강점기에 예술사진이 중요한 장르로 부각된 것은 1920년대 일본 사진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사진가들은 주로 사진관 영업 활동을 하며 초상 사진을 촬영해 왔다. 한편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웠던 선각자들은 사진을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픽토리얼리즘의 영향 아래서 특수인화법, 연초점 기법 등을 활용하여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예술사진 (藝術寫眞)
예술사진은 서양의 픽토리얼리즘사진을 번역한 용어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경 사이 다양한 공모전이나 개인전에 출품한 사진 전반을 지칭한 사진의 장르이다. 일제강점기에 예술사진이 중요한 장르로 부각된 것은 1920년대 일본 사진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사진가들은 주로 사진관 영업 활동을 하며 초상 사진을 촬영해 왔다. 한편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웠던 선각자들은 사진을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픽토리얼리즘의 영향 아래서 특수인화법, 연초점 기법 등을 활용하여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삼정사진관은 1925년 사진사 서순삼이 평양 종로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평양 종로통 3번지에 위치했었다. 관주 서순삼은 영업사진가로 일하면서 동아일보사 및 조선일보사의 평양지국 촉탁 사진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삼정사진관 주최로 평양 최초의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하고, 사진단체 오월회를 조직하는 등 평양의 사진제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삼정사진관 (三井寫眞館)
삼정사진관은 1925년 사진사 서순삼이 평양 종로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평양 종로통 3번지에 위치했었다. 관주 서순삼은 영업사진가로 일하면서 동아일보사 및 조선일보사의 평양지국 촉탁 사진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삼정사진관 주최로 평양 최초의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하고, 사진단체 오월회를 조직하는 등 평양의 사진제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