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사진관을 개설한 설천(雪川) 서순삼(徐淳三, 1903~1973)은 평양 태생으로, 1918년경 평안도 진남포의 일본인 사진관에 들어가 다년간 사진술을 배웠다.
도제식 교육의 한계를 느낀 서순삼은 1922년 겨울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도쿄에 있는 세이소쿠중학교[正則中學校]를 졸업한 후 1923년 코니시사진전문학교[小西寫眞專門學校, 현 동경공예대학의 전신]에 입학했다. 코니시사진전문학교는 코니시로쿠사진공업주식회사에서 설립한 사진학교로, 당시 유일한 사진고등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서순삼은 그해 9월 1일 동경을 강타한 관동대지진(関東大地震)으로 인해 유학 도중에 귀국하게 되었다. 1925년 평양으로 돌아온 그는 종로에 삼정사진관을 개설하고 사진업을 시작했다.
서순삼은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의 평양지국 사진기자로도 활동했다. 당시 언론사들은 지국마다 사진기자를 둘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사진사와 계약을 맺고 촉탁 사진기자로 활용했던 것이다.
그가 촉탁 사진기자로 취재한 대표적인 사건은 1931년 7월 평양에서 일어난 화교배척사건(華僑排斥事件), 일명 평양 화교 학살사건이었다.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에 대한 오보로 촉발된 전국적인 배화사건(排華事件)이 7월 4일부터 6일까지 평양에서 일어났으며, 모두 142명의 중국인이 사망했다. 서순삼은 이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조선일보』의 홍종인과 『동아일보』의 곽복산 등과 함께 현장을 누비며 생생한 기록사진을 남겼다.
서순삼은 영업사진사로서 사진조합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1928년 창립된 평양사진조합(平壤寫眞組合)에서는 간사를 맡았으며, 1931년 평양사진동업회(平壤寫眞同業會)에서는 대표를 역임했다. 또한 1936년 설립된 평양모란봉사진조합(平壤牡丹峯寫眞組合)에도 참여하여 1938년에는 회계를 맡기도 했다.
그는 사진업에 종사하는 한편 예술사진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1931년 평양 수옥리(水玉里)에 위치한 조선일보 평양지국에서 삼정사진관 주최로 제1회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에는 서순삼의 사진 40점과 경성사진사협회와 진남포옥사진관(鎭南浦屋寫眞館)에서 특별 출품한 것을 합쳐 모두 8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 전람회는 1929년 조선 최초로 개인사진전람회를 개최한 정해창에 이은 두 번째 개인전이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당시 신문에 게재된 보도 기사나 광고 기사에 의하면 개인전이 아닌 연합전의 형태로 치러졌다.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3일간 총 5천여 명이 관람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조선일보』에서는 이 전시를 두고 예술사진을 평양에서 처음 소개한 전람회라고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2년 뒤인 1933년 평양 소재 사진관들이 연합하여 부내 신창리 동명서관(東明書館) 4층에서 제1회 사진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각 사진관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풍경사진과 인물사진 39점이 출품되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전람회를 통한 예술사진의 생산과 유통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순삼은 또한 예술사진 관련 단체에 참여하여 사진 창작 활동을 영위하기도 했다. 그는 먼저 1932년 결성된 경성인상사진연구회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여, 그해 오사와상회[大澤商會] 갤러리에서 열린 제1회 회원전에 출품했다. 또한 1934년에는 사진관을 운영하던 김영선(金永善), 장승엽(張承燁), 현일영(玄一榮)과 조각가 문석오(文錫五) 등과 함께 오월회(五月會)를 창립하여, 매년 회원전을 갖기도 했다.
그는 오월회를 중심으로 평양에서 예술사진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전국 규모의 관전과 민전의 사진공모전에도 다수 출품했다. 1934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경성일보사와 전조선사진연맹이 공동 주최한 조선사진전람회에는 「음(蔭)」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했으며, 1937년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납량사진현상모집에 출품한 「대동강 연광정(練光亭)」과 「목욕」은 가작을 받았다.
1937년 7월 삼정사진관은 종로통에서 차관리(釵貫里)로 신축 · 이전했으며, 동아일보사 평양지국 지정 사진관이 되었다. 또한 1940년 관서체육회(關西體育會) 주최, 동아일보사 평양지국 후원으로 열린 제16회 전조선축구대회에서는 삼정사진관이 대회 참가 신청 장소로 지정되었다.
삼정사진관은 개별 영업 사진관을 넘어 평양의 주요 조선인 사진조합 및 사진단체의 사무소이자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의 평양지국 지정 사진관이었으며, 지역사회 주요 행사의 통로 역할을 했다. 평양사진계를 이끈 핵심 공간이었던 삼정사진관은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으로 물자수급이 어려워지자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