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창 ()

사진
인물
한국인 최초로 예술 사진 개인전을 개최한 사진가.
이칭
무허(無虛), 수모인(水母人)
하연(何延), 유재(悠裁)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사망 연도
1968년
출생지
서울
주요 작품
여인의 초상, 인형의 꿈 연작
주요 경력
정해창군 예술사진작품전람회 개최, 덕성여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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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정해창은 한국인 최초로 예술 사진 개인전을 개최한 사진가이다. 1929년 서울에서 한국인 사진가 최초로 예술 사진 개인전을 개최하여 한국 사진계의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첫 개인전을 연 1929년부터 예술 사진 활동을 중단한 1939년까지 10여 년간 4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들을 통해 독특한 한국적 미의식이 깃든 500여 점의 사진 작품을 발표하였다. 정해창의 풍속 사진과 인물 사진, 실험적 구성 사진은 사진이라는 서구적인 예술 방법을 가지고 어떻게 한국의 정서를 드러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정의
한국인 최초로 예술 사진 개인전을 개최한 사진가.
인적사항

1907년 서울 종로4가에서 한약방을 하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는 하연(何延) · 유재(悠裁)이고, 호는 무허(無虛) · 수모인(水母人)이다.

주요 활동

1922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외국어학교[東京外國語學校]에서 독일어를 전공하였다. 이 시기에 도쿄[東京]에 있던 가와바타회화연구소[川端繪畵硏究所]에서 서양화를 배웠고, 도쿄예술사진학교[東京藝術寫眞學校] 연구실에서 사진 화학을 연구하며 사진을 시작하였다. 1926년에는 중국에 체류하면서 사진술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과 금석학 연구를 병행하였다.

1927년 귀국해 서울 종로4가의 본가에 근거를 두고 사진 창작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2년 후인 1929년 서울 광화문빌딩 2층에서 조선인 최초로 예술 사진 개인전을 열어 한국 사진계의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개인전 제목은 '정해창군 예술사진작품전람회'로,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1931년에는 조선일보사 후원으로 대구, 광주, 진주 등을 도는 지방 순회 전시를 개최하였다. 두 번째 개인전이었는데,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의 성과를 각 지방에 소개하기 위한 목적의 전시였다. 1934년에는 서울 소공동 낙랑다방[현재의 조선호텔 부근 지하상가]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한국인의 모습으로 제작한 인형과 소품, 민속품을 조합한 구성 사진을 선보인 전시였다. 1939년에는 종로2가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네 번째 개인전인 정해창사진인화개인전을 열었다. 이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사진 작업을 중단하였다.

이후 1941년 화신백화점 7층 화랑에서 수모인정해창서도전각전(水母人鄭海昌書道篆刻展)을 통해 붓글씨와 전각의 세계를 선보였다. 1950년부터 덕성여자대학,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동양 미술사를 강의하였고, 교양 과목으로 사진예술 과목도 만들어 강의하였다. 1951년에는 피난지인 부산에서 두 번째 서예 전시 수모인서예전(水母人書藝展)을 열었다. 이 무렵 직접 사진 작업을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사진 분야의 발전을 위해 잡지 등에 사진에 관한 논단을 여러 차례 게재하였다. 1956년 창간한 한국사진문화사의 『사진문화』 창간호에는 축사를 써 주기도 하였다. 또한 1959년에는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실용사진학』이라는 사진 입문서를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1957년 뜻하지 않게 다리 부상을 당하였는데, 이때부터 자택에서 칩거하며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전통 사찰의 건축 양식과 부도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부도(浮圖)의 양식(樣式)에 관한 고략(考略) - 신라시대(新羅時代)의 팔각당형(八角堂形)에 대하여」라는 논문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부도의 역사와 그것의 미술사적 가치를 신라시대 팔각당형 형식을 중심으로 고찰한 논문으로, 정해창의 전통 미술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엿볼 수 있다.

1966년 당시 유일한 사진 전문 잡지인 『사진예술』 창간호에 지난 사진 활동을 회고하는 인터뷰를 실었으며, 1968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동시대에 자화상 사진을 많이 남긴 신낙균과 더불어 한국 근대 사진의 절정을 만든 사진가이다.

작품의 경향과 특징

정해창은 4회에 걸친 개인전을 통해 독특한 한국적 미의식이 깃든 500여 점의 사진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사진 경향은 4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여성 사진이다. 절제된 아름다움을 기품 있게 표현하여 조선 여인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둘째는 자화상으로, 조선에서 태어나 자란 근대적 사진가로서의 자신을 피사체로 삼아 개인의 존재를 구현하였다.

셋째는 오브제를 이용한 연출 사진이다. 인형, 파이프, 책, 화병, 각종 장신구 등의 정물로 연극 무대와 같은 특정 상황을 연출한 후 각 장면을 촬영하였다. 현실과 비현실을 섞어 양자의 경계를 지우는 초현실주의적 작업이었다.

넷째는 풍속 사진이다. 산, 강, 바다, 농가, 시장, 신작로, 기와집 등의 풍경을 찍으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드러내었다. 단순한 풍경 사진을 넘어선 풍속 사진으로,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일상과 풍속에 대한 종합 보고서이다. 짙은 서정성과 전통적 미의식이 발현된 이들 풍속 사진에는 사물을 관조하면서 유유자적하는 한국의 전통적 시선이 그대로 배어 있다.

정해창의 풍속 사진과 인물 사진, 실험적인 구성 사진은 사진이라는 서구적인 예술 방법을 가지고 어떻게 한국의 정서를 드러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일보』(1929. 3. 28.)

단행본

박주석, 『한국사진사』(문학동네, 2021)
『한국현대사진60년: 1948~2008』(국립현대미술관, 2008)
박평종, 『한국사진의 선구자들』(눈빛, 2007)
『벽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일민미술관, 2007)
Robert A. McCloy, 『실용사진학』(정해창 옮김, 동명사, 1959)

신문·잡지 기사

「한국사단의 개화자: 유재 정해창 편」(『사진예술』, 대한사진문화사, 1966. 8.)
집필자
박주석(명지대 교수, 한국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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