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오랫동안 한국 주1의 주2이자 주3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민족지라는 기치를 내걸고 창간한 『동아일보』가 백두산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관련 기사를 쓰고 행사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창간한 다음 해인 1921년 신문사의 전체 역량을 투입해 백두산 관련 기획을 하였다. 사진기자를 포함한 ‘백두산탐험대’를 구성해서 파견했고, 특히 백두산의 경치를 찍은 사진을 신문에 싣는 보도는 가장 중점을 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찍은 사진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기도 하였다.
백두산 탐험대가 촬영한 사진은 여러 차례 신문에 연재되었고, 사진을 주4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백두산 강연회와 환등회를 개최하였다. 『동아일보』는 여러 차례 기사와 주5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렸고, 1921년 8월 27일 종로 YMCA에서 행사를 열었다. 행사 명칭은 ‘특사환등(特寫幻燈) 사용(使用) 백두산강연회’였다. 여기서는 백두산의 민족적 의미를 다룬 조선역사 전문가〔 권덕규〕의 강연과 탐험대 대장〔 민태원〕의 체험담 발표가 있었고, 더불어 30여장으로 만든 사진환등회를 같이 진행하였다. 백두산에서 찍은 ‘신기하고 장엄한’ 사진을 환등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초청한 신문 독자들에게 공개했던 것이다.
사진환등란 주6를 이용하여 그림이나 사진 등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영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종의 디스플레이 방식이다. 환등(幻燈)[Magic Lantern]은 유리판에 사진이나 삽화를 입혀 주7이나 전구의 빛으로 스크린에 비추는 방식의 우리식 이름으로, 초기에는 ‘등불노리’라고 불렸다. 서양에서의 학문적 명칭은 ‘Monochrome Transparencies on Glass’, 일반적으로는 ‘랜턴 슬라이드[Lantern Slide]’라고 불린다. 요즘말로 하면 ‘환등기’는 ‘슬라이드 프로젝터’, ‘환등회’는 ‘슬라이드 쇼’에 해당한다. 사진 환등은 주로 흑백이었지만, 그림이나 도식과 같은 경우에는 채색을 하거나 삼색 분해 방식으로 색을 입힌 컬러도 있었다.
한국에서 처음 환등회가 열린 것은 1899년이었다. 『황성신보』 12월 8일 기사는 서울 정동 원두우[元杜尤, Horace Grant Underwood][^8]의 집에서 환등회가 열렸음을 알리고 있다. 1900년에는 ' 상동교회 기독청년회'에서 환등회를 개최하여 미국 선교사가 가져온 종교 관련 사진을 처음 공개하였다. 이 시기의 환등회는 선교 단체의 선교사, 외국어학교의 외국인 교사,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 등 외국인이 주도하였다. 일반인들의 환등 경험은 ' 황성기독교청년회학관' 즉 YMCA에서 주도하였다. 환등회 사업을 시작한 YMCA는 1907년 정식 명칭을 ‘환등대회’로 정하고 주 1회 꼴로 환등대회를 개최하면서 당시 환등 문화를 주도하였다. 따라서 ' YMCA 사진과'의 커리큘럼 중 반 이상은 랜턴 슬라이드 제작에 관한 것이었다.
1920년대는 환등이 민중의 계몽수단으로 적극 활용되던 때였다. 1900년대 초에 처음 시작된 사진환등회는 농촌계몽과 위생계몽을 위해 외국의 실상 등을 소개하는 등 신문화, 신생활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