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사진과는 1910년 한성부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공적 사진 교육기관이다. 국민 계몽을 위한 교육과 기술교육을 강조하였던 YMCA는 1910년 사진과를 개설하여 사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일제의 간섭과 탄압,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폐과가 결정되자, 한국 사진사 단체인 경성사진사협회가 YMCA 사진과를 인수하여 1929년 2월 경성사진학강습원으로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사진관을 운영한 초기의 사진사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한국의 사진 문화를 이끄는 데 기여한 교육기관이었다.
YMCA 황성기독교청년회는 1903년 한성부에 창설된 단체로서, 오늘날 서울기독교청년회[YMCA]의 전신이다. 1899년경부터 언더우드(Underwood), 아펜젤러(Appenzeller)와 같은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지식층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선교 목적의 단체를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02년 배재학당 학생들로 조직된 한국 YMCA가 세계학생기독교연맹에 가입하여, 오늘날 서울기독교청년회의 전신인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선교뿐 아니라 교육과 계몽에도 주력하였다. 한국 근대 교육에 관심이 있던 황성기독교청년회는 1910년, 황성기독교청년회학관의 교육과정으로 사진과를 설립하였다.
황성기독교청년회는 1906년 2월 황성기독교청년회학관을 설립하고 중등교육을 실시하였다. 국민 계몽을 위한 교육과 더불어 일인일기(一人一技) 기술교육을 강조하였던 황성기독교청년회학관은 1910년에 공예과를 설치하였다. 세부적인 전공과목으로 목공과 철공, 기계, 염직과 더불어 사진과를 개설하고 사진 교육을 시행하였다. YMCA 사진과는 한국 최초의 공적인 사진 교육기관으로서 근대 사진 교육 및 사진 문화 창출을 담당하였다. 사진과의 책임은 목공과 철공 등 공업교육의 전문가였던 캐나다인 그레그[G. A. Gregg]가 맡았는데, 그는 사진에도 조예가 깊어 사진 교육의 책임자 역할도 함께 병행하였다. 하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실무교육을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고, 실제 교육은 하와이에 이민을 가서 사진을 배운 최창근(崔昌根)을 초빙하여 실시하였다.
최창근은 하와이 이민자 1세대로서, 1904년 하와이에 정착한 이후 사진 기술을 습득하여 사진관 운영 및 사진술 교육자로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1910년부터 YMCA 사진과 교육을 담당하였던 최창근은 YMCA 사진과 교과서로 사용하기 위해 『자택독습최신사진술』을 출판하였다. 미국인 스티스 볼드윈[Stith T. Baldwin]이 1903년에 발행한 『Picture Making for Pleasure and Profit』을 번역하여 출판한 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기술 번역서이다. 『자택독습최신사진술』은 사진 기계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인화와 약품 제조법, 실용적인 사진술 습득을 위한 사진 기술 등을 총망라한 책으로, YMCA 사진 교육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27년부터는 동경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귀국한 신낙균(申樂均)이 YMCA 사진과 교수로서 교육과정을 담당하였다. 신낙균은 사진의 공교육을 위해 『사진학강의』 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여 사진의 학문적 체계를 정립함과 동시에 사진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일제의 간섭과 탄압,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1928년경 결국 YMCA 사진과의 폐과가 결정되었다. 이에 한국 사진사 단체인 경성사진사협회의 주도로 폐과 상태가 된 YMCA 사진과를 인수하여 1929년 2월 경성사진학강습원을 설립하였다.
YMCA 사진과는 한국 최초의 공적 사진 교육기관으로서 사진 교육의 토대를 이룩하였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사진관을 운영한 초기의 사진사들을 다수 배출하였으며, 한국의 사진 문화를 이끄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