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37년경, 박영진을 초대 회장으로 서울의 아마추어 사진가 23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진 단체.
설립 목적
주요 활동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의 중요한 행사로는 연 1회 인화전람회를 개최하여 회원들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장을 제시하는 한편 매월 월례회와 촬영회 등을 진행하였다. 월례회 때는 매월 촬영한 사진의 제출을 의무화하고 회원들의 작품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였다. 월례회에서 뽑힌 우수 작품은 단체의 본부 역할을 한 오자와 상회의 진열창에 상설 전시되었다.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경성아마추어 사진 구락부는 아마추어 사진 단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 식민지의 심한 규제 대상이었다. 집회 신고는 의무 조항이었고 촬영이나 전시에 대해서도 감시와 통제를 피할 수 없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1943년 해산하였는데 이해선은 단체의 해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1943년에 종언을 고했어요. 그때는 전쟁이 한창이었고 사진재료도 관청에서 배급제도로 한 달에 사진 하는 사람들에게 필름 몇 개, 인화지 몇 장, 이렇게 하니 충분한 작품 활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단체에 대한 해산령이라는 것이 있어서 순수한 예술단체이지만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어서 해산을 하고 말았어요. 당시에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우선 월례회 날짜를 정하게 되면, 시간과 장소를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해요. 그러면 형사가 그 장소에 나와서 모임을 지켜보고 감시를 해요. 사진을 전시할 때도 누드 사진은 절대로 내지도 못하고, 풍기문란이라고 떼어내니까. 또 촬영을 해도 가령 당인리나 그 근처에 나가 촬영을 했다가 고압선이나 가는 전선주 하나만 찍혀도 전쟁 때이니까 당장에 철회하라고 했어요. 사실 일본 관헌들에게 부대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최인진, 『한국 사진사 1631~1945』(눈빛,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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