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사구회는 1930년대 YMCA 황성 기독교 청년회 학관 사진과 출신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진가 단체이다.일제강점기 경성 사진사 협회, 경성 아마추어 사진 구락부, 백양 사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인 사진가들로만 결성된 단체로서 다수의 재한 일본인 사진가 단체들과 경쟁을 하며 사진 예술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경성사구회는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던 YMCA 사진과 출신으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사진예술 활동을 지향하는 사진가들의 단체이다. 1930년대 사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예술사진은 아마추어 사진 단체와 공모전을 통해 널리 확산되었으며, 그 중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가 경성사구회로 신낙균의 지도 하에 YMCA 사진과 출신으로 결성된 단체였다.
일제강점기 사진 단체 대부분은 재조선 일본인 거류자들이 중심인 단체들이였으며 한국인 사진가들이 소수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 결성된 일본인 단체들로는 1909년에 설립된 한국사우회[1912년 계림사진회로 개칭], 1930년대 조선사우회, 조선 총독부의 개입하에 관제 사진 단체로 결성된 다수의 아마추어 사진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성사구회는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사진단체로서 주요 구성원들은 YMCA 사진과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회원 중에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구성원 뿐 아니라 민충식, 신칠현 등 영업 사진관을 운영하는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성사구회 회원들의 공통된 목표는 사진의 순수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즉 카프[KAPF] 영화부의 핵심 멤버이자 영화평론가 전평은 1934년 4월 5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사진예술에 대하야」 라는 글에서 경성사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사구회는 신낙균씨의 지도에서 조직된 수백명의 조선 아마추어 사진가의 클럽이다. 현재에 있어서 사구회 자체가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것 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아마추어 사진가의 그룹인 사구회에 대해서는 조선의 진정한 사진예술의 건설을 위해서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전평의 글은 경성사구회가 당시 상당수의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는 단체로서 한국 예술사진의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단체로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끌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주요 단체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경성사구회는 YMCA 사진과가 재정적인 어려움 등을 이유로 폐지의 위기에 처했을 당시 사진 교육기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성사진사협회와 경성인상사진연구회 등과 협력하여 조선총독부 학무 당국의 공식 인가를 받고 사진 교육기관인 경성사진학강습원을 개교하는데 기여하였다.
경성사구회 다음으로 만들어진 가장 큰 규모의 예술사진 단체는1937년 결성된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이다. 경성사구회가 특정 학교 동문을 중심으로 만든 친목 성격이 강했던 반면 경성아마추어 사진구락부는 당시 서울에서 사진으로 인지도를 갖고있는 한국인 사진가들이 아마추어 예술 사진을 표방하면서 조선 총독부의 관제 사진 단체인 전조선사진연맹 및 일본인 사진 단체에 대항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경성사구회는 1926년 한국인 영업 사진사들로만으로 결성된 최초의 사진 단체인 경성사진사협회,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 백양사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인 사진가들로만 결성된 단체로서 다수의 재한 일본인 사진가 단체들과 경쟁을 하며 신사진 예술의 방향을 모색한 단체로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