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선사진연맹 ()

사진
단체
1934년,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조직한 사진 단체 연맹체.
단체
설립 시기
1934년
설립자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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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전조선사진연맹은 1934년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조직한 사진 단체 연맹체이다. 1920년대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주도하는 예술사진의 경향이 중요한 문화적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예술 사진에 대한 열기를 식민지배의 정당성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를 교두보로 하여 조선내 사진을 연구하는 단체들을 통합하는 연맹체로서 전조선사진연맹가 결성되었다. 연맹에 참여한 단체의 수는 50여 개에 달했고 조선사진전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정의
1934년,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조직한 사진 단체 연맹체.
설립 목적

전조선사진연맹은 1934년 조선총독부가 식민지배 정책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조직한 사진 연맹체이다. 1920년대에는 아마추어 사진가 수의 증가 및 사진 단체의 결성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는 예술사진의 경향이 확산되는 바탕이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예술 사진에 대한 열기를 식민 지배와 동화정책의 옹호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시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담당했던 『경성일보』를 통하여 조선내 사진을 연구하는 단체들을 통합하는 연맹체 전조선사진연맹을 결성하도록 유도했다. 『경성일보』의 사고(社告)에는 전조선사진연맹에 사진 단체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이 실려있다. “전조선 사진 연맹, 이에 강고한 결성!! 각 유력 단체를 망라, 각지의 사진 단체의 참가를 요청”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정관에 명시한 사업의 목적으로는 “사진에 관한 연구, 조사, 촬영, 전람, 가맹 단체 상호간의 정보 교환과 강연, 견학, 시찰, 작품 장려, 소개, 출판 등을 행하며 빛나는 사진 조선을 지향하여 강력한 권위 단체로서 활동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한 결과 전조선사진연맹에 참여한 단체의 수는 50여 개에 달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아마추어 사진가 단체들 뿐만 아니라 조선인 중심의 아마추어 사진 단체, 사진관을 운영하는 상업 사진가들의 단체들까지 연맹에 가입하게 되었다. 전조선사진연맹은 예술사진 활동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변천 및 현황

전조선사진연맹은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문화통치’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전조선사진연맹의 이사회 5명 중 이사장을 포함하여 이사 3명을 『경성일보』의 조직원들로 임명하였다. 민간 이사 중 한명으로 선임된 야마자와 산조[山澤三造]는 조선총독부 식산국(殖産局)의 지질조사 담당 직원이었다. 특히 야마자와는 1927년부터 일본인들로 구성된 사진 동호회 단체인 조선사진회(朝鮮寫眞會)를 조직하고 단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야마자와를 앞세워 전조선사진연맹의 결성을 주도하도록 독려했다. 조선총독부는 동맹의 주요 인사 구성에도 깊이 관여함으로써 전조선사진연맹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명백이 드러냈다.

주요 활동

전조선사진연맹은 식민지 조선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사진가들의 활동을 통해 급부상할 수 있었다. 특히, 전조선사진연맹이 당시 사진 문화의 흐름을 주도한 주요한 단체로서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사진전람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그 궤를 같이한다. 조선사진전람회는 1934년 창립 기념 제1회 전조선사진전람회로 시작하여 1943년에 이르기까지 10회에 걸쳐 경성일보사의 후원 형식으로 주최한 전시였다. 2회부터 6회까지는 조선사진살롱으로 이름이 바뀌어 진행되기도 했던 이 사진 공모전은 수상자와 수상작을 『경성일보』 지면에 발표했고, 수상작들은 미스코시[三越]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최고상에 해당하는 추천작 입선자 2명에게는 각각 조선총독부 ‘이왕직장관상’과 ‘학무국장상’이 ‘경성일보사장상’과 함께 수여되었으며, 특선 5명에게는 ‘경성일보사장상’이 주어졌다.

조선총독부는 많은 혜택과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조선 전체 사진계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따라서 본 공모전의 입선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사진계의 지도급 인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교두보로 여겨졌다. 공모전 초기에는 한국인이 입선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일본 거류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모전이었고 전시 행사였다. 그러나 임응식, 박필호, 서순삼, 김정래, 정도선, 최계복, 이형록 등 한국인 사진가들이 작품을 출품하고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선작 중 상당수는 일본인들의 작품이었고 당선작 중 한국인의 사진은 1/10에도 못미치는 수치였다.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문화정책 하에 결성된 전조선사진연맹이 주도한 예술사진의 형식은 해방 이후 살롱사진이라는 용어로 폄하되었고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사진의 리얼리즘을 강조하는 경향을 촉구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주석, 『한국 사진사』(문학동네, 2021)
최인진, 『한국 사진사 1631~1945』(눈빛, 1999)

신문·잡지 기사

『사진과 문화』 6(한국사진문화연구소, 2013)
집필자
오혜리(명지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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