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사진이라는 용어는 해방 이후에 와서야 등장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성행하던 각종 주1은 주2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예컨대 1934년부터 1943년까지 경성일보가 주최했던 "전조선사진살롱"이 전조선사진연맹 주관의 공모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살롱’이라는 용어는 공모전이라는 제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 공모전은 1910년대부터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국제적인 사진의 흐름이었던 픽토리얼리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픽토리얼리즘은 1890년대부터 시작되어 1910~20년대까지 서양의 아마추어 사진 단체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고 그들이 주최했던 공모전은 사진 살롱[photographic salon]으로 불렸다. 따라서 주3가 주관한 사진 살롱은 당시 국제적으로 유행하던 공모전 제도를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살롱사진이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공모전에 출품된 사진을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해방을 거쳐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 회화적 효과를 추구하는 예술사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공모전에 출품됐던 예술사진이 픽토리얼리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예술사진은 기술적으로는 특수인화 기법을 사용하며, 주4을 통해 선명한 묘사를 지양하고 흐릿한 회화적 효과를 추구하며, 자연풍경이나 주5인 주제를 다루는 경향이 뚜렷했다. 1950년대에 살롱사진은 시대착오적 사진 경향으로 간주되어 배척당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사진이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면서 살롱사진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한마디로 살롱사진은 주6에 빠져 사회현실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주7 사진을 시대적 소명으로 인식했던 사진가들을 중심으로 개진되면서 한국 사진 전체를 살롱사진과 리얼리즘 사진의 이분법으로 이해하는 편향적인 시각을 낳기도 하였다. 예컨대 1950년대를 기점으로 일제강점기는 살롱사진, 이후는 리얼리즘 사진의 시대라는 것이다. 나아가 생활주의 사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살롱사진을 주8로 폄하하며 타기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살롱사진은 미학적 용어가 아니라 제도적 용어이며,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가들도 출품했던 공모전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