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6년 3월에 설립되었다. 회장에 박영진, 부회장에 이해선을 선임하여 결성된 이 단체는 예술사진을 지향하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비롯하여 신진 사진가들이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예술사진의 발전과 영향력 확장을 위해 전국 단위의 대규모 주1을 기획했으며 그 명칭을 '전국예술사진공모전'으로 정했다. 첫 전시는 1947년 7월에, 2회 전은 1948년 12월에, 3회 전은 1949년 12월에 서울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열렸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계기로 명칭을 대한사진예술연구회로 바꾸게 되며, 공모전 또한 한국전쟁을 맞으며 중단되었다.
제 1회 공모전에는 응모작이 400여 점이었으며, 특선과 입선을 포함해 60여 점이 전시되었다. 입상자는 일제강점기에 공모전 입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정도선, 최계복을 비롯하여 구왕삼, 이건중, 조상규, 임인식, 조명원, 방대훈 등이었다. 2회 전에는 안월산, 이경모, 임윤창, 지부원, 홍상영 등이 3회 전에는 정인성, 이병삼, 이안순, 성두경, 송진화 등이 입상하였다. 입상 작품은 주로 일제강점기 예술사진 작풍과 유사했다. 2회 전에서 특선 1석을 받은 안월산의 「기와굴의 아침」이나 특선 2석을 받은 이경모의 「잔설」, 3회전 특선작 정희섭의 「감 나는 곳」 등은 향토색을 강조하는 일제강점기 예술사진의 서정적 풍경사진에 가깝다.
조선예술사진전람회는 해방 후 예술사진의 발전과 후진 발굴을 위해 개최된 최대 규모의 공모전이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사진가를 비롯하여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며 창작 열기를 고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사진예술에 대한 이론 연구를 목표로 내걸었음에도 실제 예술사진에 대한 개념 정의와 미학적 논의는 충분치 않아 공모전임에도 명확한 심사 기준을 정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그 결과 기술적 완성도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 한편 일제강점기 예술사진의 경향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봉착하였다. 따라서 사진계 내부에서는 공모전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표출되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이 전시는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했던 주2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신진 작가들의 주3 역할을 하면서 이후 한국 사진의 주요 작가로 성장하게 될 다수의 사진가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