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선은 1945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예술 사진의 한 축을 이끈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양화와 사진을 병행하다가, 점차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직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예술 사진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화협회에 가입하여 유화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 사진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32년에 이왕가박물관 한국고미술품관리위원, 1934년에 이왕가 덕수궁미술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구황실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일을 하였다. 이때부터 쇠락해 가는 옛 궁궐의 주요 건물과 각종 문화유산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이해선은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여 주로 아마추어 사진가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시작은 1936년에 창립된 경성아마추어사진가구락부의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해선을 비롯하여 박영진, 현일영, 이태웅, 김정래, 박필호, 이해선 등 23명이 창립 회원으로 참가하였다. 해방이 되던 1945년에는 조선사진예술연구회 창립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다. 이 단체는 전국의 사진가들을 규합하여 발족하였으며, 후일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되었다. 대한사진예술가협회가 주관한 공모전은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가의 등용문 역할을 하였다.
이해선의 주요 작품은 1974년 11월 20일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향토풍물 오십경(鄕土風物 五十景)'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선보였다. 토속적인 전원 풍경을 비롯한 한국적 소재를 특유의 조형적 시각으로 형상화해 낸 작품들이었다.
이해선은 사진의 사실성에 바탕을 두되,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감성적 해석으로 대상을 재창조하여 예술적인 승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예술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을 촬영할 때 화면 구성과 배치, 구도의 선택, 빛의 활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일제강점기 촬영한 궁궐 사진 원판들이 한국전쟁 와중에 모두 손실되어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촬영하였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촬영하였으며, 1980년에 『한국의 고궁』으로 출간하였다. 2005년에는 이해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해선 사진집』이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