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취미로 사진을 시작하였으며,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다.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에는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협회에 참여한 다른 사진사들과 함께 조선인 사진사의 규합과 자주적인 한국 사진 문화 발전을 위해 힘썼다. 1927년 YMCA 사진과 후원, 1934년 경성사진학강습원 설립, 1935년 경성아마추어 카메라 구락부 창립에 관여하였다.
일제강점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29년 8월 조선박람회 기념 전국예술사진공모전 특선작 「오후」, 1937년 제4회 전조선사진살롱 입선작 「이야기」 등의 작품이 알려져 있으나, 현재 남아 있지는 않다. 1937년 조선일보가 시작한 납량사진현상공모전의 심사위원을 제1회부터 4회까지 맡아 심사평을 쓰며 평론 활동도 펼쳤다.
해방 후인 1946년에는 대한사진예술연구회와 서울사진가협회 창립에 관여하였다. 1952년 한국사진작가협회 고문, 1962년 한국사진협회 고문을 맡았다. 서라벌예술대학,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으며, 1981년 사망하였다.
주로 사진 교육용 교재나 사진 잡지에 단편적으로 글을 발표하였다. 그중 「한국사진 발달사」는 한국 사진사 연구의 틀을 마련한 글로 꼽힌다. 1949년 『사진문화』에 발표한 「영업사진의 예술성」에서는 초상 사진의 미학을 개진하였다. 이 글에서는 사진관을 직접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안면론, 형모학 등을 접목하여 효과적인 초상 사진 제작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 밖에 서양 사진사를 소개하는 글을 각종 지면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사망 1주기를 맞아 박필호의 육필 원고를 정리한 『사진을 말한다』가 1982년 출간되었다. 이 책은 박필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에 복간본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사진에 관한 에세이, 비평문, 교육 자료, 서양 사진사, 한국 사진사 등을 망라한 미발표 원고가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