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호가 1925년 서울시 종로 3가 단성사 근처에서 개업했다. 수은동에 영업장을 두고 1930년대에 활발한 영업 활동을 펼쳤으나, 1930년대 이후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정황으로 미루어 1930년대 후반 폐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사진의 개척자 지운영이 1884년 마동에 최초의 조선인 사진관을 설립한 이후 북촌은 조선인 사진관의 주요 활동 거점이었다.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컸던 조선인 사진관은 해강 김규진이 개업한 천연당사진관이지만 장소는 일본인 사진관이 주로 모여있던 남촌이었다. 1910년대에 영업 활동을 했던 북촌의 조선인 사진관으로는 1912년 김준식이 개업한 금광사진관, 1916년 김시련이 개업한 시련사진관과 1919년에 개업한 옥영사진관, 1920년 공평동에 설립된 금옥당사진관이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북촌의 조선인 사진관은 YMCA 사진과에서 사진술을 배운 여성 사진사 이홍경이 1919년 남편 채상묵과 인사동에 개업한 경성사진관, 1921년 이홍경이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설립한 조선부인사진관 등이 있다.
1920년대는 조선인 사진관의 전성기로 신칠현의 녹성사진관, 민충식의 태평양사진관, 박만달의 조선사진관, 이완근의 조선사진관 등 수많은 조선인 사진관이 영업 활동을 펼쳤다. 박필호의 연우사진관은 북촌에 있던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조선의 사진문화를 발전, 계승한 대표적인 사진관으로 평가받는다. 설립자 박필호는 특히 조선인 사진사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던 선각자로 경성사진사협회 결성을 주도했으며, 경성사진학강습원 원장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런 점에서 연우사진관은 북촌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일제강점기 한국 사진문화의 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