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경 ()

사진
인물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경력
부인사진관 운영,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 초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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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홍경은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이다. 남편 채상묵에게 사진을 배워 서울 관철동에서 1921년 5월 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24년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26년부터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에서 경성사진관을 운영하였다.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또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로 초빙되어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
인적사항

개항기 대표적인 초상화가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의 셋째 아들인 채상묵(蔡尙黙)의 아내이다. 채상묵은 1913년에 일본으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가 1918년 귀국하여 직업 초상화가로 활동하였다. 유학 당시 초상화 제작의 편리를 위하여 사진술을 배웠다.

주요 활동

남편 채상묵에게 3년간 사진술을 배워 1921년 5월 서울 관철동 75번지에 조선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사진 실력이 뛰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고객이 몰렸고, 개업한 지 10개월 만인 1922년 3월 사진관 건물을 2층으로 증축하였다.

1924년에는 남편 채상묵이 초상화가에서 초상 사진사로 전업하면서 부부가 공동으로 사진관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朝鮮寫眞館)으로 변경하였다. 이홍경 명의로 사진관 등기를 마쳤으며, 종로1정목[현 종로1가]에 조선사진관 지점을 설치한다는 그해 11월 신문 광고에도 본인의 모습을 실을 정도로 사진관 운영을 주도하였다.

1926년 3월경에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경성사진관(京城寫眞館)이라는 새로운 사진관을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이홍경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당시 『조선일보』에서 「조선 여성이 가진 여러 직업」이라는 연재 기사를 내고 있었는데, 1926년 5월 18일 자 기사에서 여덟 번째로 사진사를 소개하였다. “전문적 기술과 명민한 두뇌 그리고 수정을 위해 꼼꼼한 성품이 요구되는 사진사는 어느 점에서나 남자보다도 여자에게 적당한 직업이라 할 수 있고, 여전히 내외가 심한 구가정의 여성들을 촬영하기 위해서도 여자사진사가 요구된다.”라고 하며 이홍경을 소개하였다.

해당 기사는 여성 사진 교육 관련 내용도 전했는데, 근화여학교에 여자사진부가 설치되었다는 것과 이홍경이 이곳에서 사진부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1910년 개설된 YMCA 사진과가 당시 사진 학원을 제외한 유일한 사진 교육 기관이었는데, 1926년경에 이르러서는 명맥만 유지한 채 소수의 남학생만 교육을 받고 있었다. 남성들은 YMCA 사진과 외에 개별 사진관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여성들에게는 사진 교육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못하였다. 이때 근화여학교에 여자사진과가 설치되면서 여성들도 사진사가 되기 위한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홍경은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가 되었다

이홍경이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 초대 교사로 초빙된 것은 근화여학교 설립자 차미리사(車美理士)가 그리던 직업여성의 모범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일 뿐만 아니라 ‘경성의 일류 사진 기술자’로 활동하고 있던 이홍경이 여자사진과 설치 목적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 사진과가 언제까지 존속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한국 사진 교육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평가

조선인 사진관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을 때인 1921년 여성 사진사 이홍경이 개설한 부인사진관의 등장은 이례적인 사건이었고, 시대적으로도 앞섰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홍경은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진 나혜석(羅蕙錫)의 첫 개인전이 열린 해가 1921년이라는 점에서, 이홍경은 나혜석에 버금가는 신여성이었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 여성이 가진 여러 직업 8. 사진사」(『조선일보』, 1926. 5. 18.)
「부인사진관, 부인사진사로는 이홍경 씨가 처음」(『조선일보』, 1921. 5. 22.)

단행본

『3·1운동 100년 덕성 100년』(덕성100년사 편찬위원회, 민연, 2019)

논문

이경민, 「채상묵·이홍경 부부와 경성사진관」(『사진예술』, 사진예술사, 201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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