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선사진작품모집 ()

사진
의례·행사
1936년 8월, 조선중앙일보사가 조선인 사진단체 6곳의 찬조와 협력을 얻어 주최한 사진 공모전.
이칭
이칭
전조선현상사진모집(全朝鮮懸賞寫眞募集)
의례·행사/행사
시작 시기
1936년 8월
시행 시기
1936년 8월[1936년 9월 조선중앙일보사 무기정간으로 무산]
주관처
조선중앙일보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전조선사진작품모집』은 1936년 8월 조선중앙일보사가 조선인 사진단체 6곳의 찬조와 협력을 얻어 주최한 사진 공모전이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와 관변 단체에서 주최한 『조선사진전람회』의 대항 공모전으로 추진되었으나, 일장기말소사건에 연루된 조선중앙일보사가 무기정간 처분을 받게 되면서 이 행사도 무산되었다.

정의
1936년 8월, 조선중앙일보사가 조선인 사진단체 6곳의 찬조와 협력을 얻어 주최한 사진 공모전.
연원 및 변천

사진 주1은 직업 사진사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작가로 데뷔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무대로서, 예술사진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왔다. 한국에 예술사진이 들어온 것은 1900년대이며, 주로 재 조선 일본인들이 조직한 사진 단체의 회원전을 통해 작품 활동이 이루어졌다. 1910년대 중반에 이르면 사진 단체에서 주최한 공모전이 개최되기 시작했으며, 1920년대에는 사진 단체 뿐만 아니라 사진재료상, 그리고 언론매체에서도 다양한 사진 공모전을

관전(官展)주2 성격의 공모전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최되기 시작했는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주3사와 주4사가 주도하였다. 특히 1934년 경성일보사가 전조선사진연맹(全朝鮮寫眞聯盟)과 공동으로 주최한 『조선사진전람회』는 조선총독부가 1922년 창설한 『조선미술전람회』에 준하는, 일제강점기 최고 권위의 사진 공모전이었다.

그러나 『조선사진전람회』는 관변 단체인 ‘전조선사진연맹에 가입한 5인 이상으로 조직된 사진 단체에 소속된 사진가만이 출품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참여의 제한이 있었다. 그리고 심사위원이 모두 일본인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인 사진가들의 입상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한 공모전의 주제는 ‘자유’였지만, 주5 문화정책에 부응하도록 조선향토색과 군국색이 농후한 작품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심사 기준은 창작 활동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었다.

따라서 아마추어사진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조선인 스스로 심사하고 표창할 수 있는 대항 공모전이 요구되었다. 1936년 8월 공모를 시작한 조선중앙일보사의 주6은 이러한 요구 속에서 탄생했으며, “조선의 사진예술계에 새로운 기축(機軸)을 세우고자” 만든 사진공모전임을 표방했다.

행사 내용

조선중앙일보사에서는 이 공모전의 권위와 대표성을 위해 조선사진연구회, 경성인상사진연구회, 경성사진학강습원사우회, 경성사진사협회, 평양사진조합초상연구회, 평양오월회 등 경성과 평양의 대표적인 조선인 사진 단체 6곳의 협력과 찬조를 받았다. 그리고 당시 사진계를 이끌던 박필호[경성인상사진연구회 대표], 현일영[조선사진연구회 동인], 김광배[경성사진사협회 회장] 등 각 사진 단체 대표들의 축하 메시지를 지면에 게재하였다. 그만큼 이 공모전은 조선인 사진가들의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1936년 8월 27일자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제1회 전조선사진작품모집』의 출품 규정을 보면, 모집 대상은 ‘초추(初秋)’를 주제로 한 풍경 · 인물 · 스케치 · 기타의 사진으로, 작품 크기는 캐비넷[cabinet]판 이상 4절 이내의 밀착 및 확대 인화로 정했으며, 출품 자격과 출품 점수는 무제한이었다. 제출 기한은 9월 30일까지로 했으며, 시상은 특선, 준특선, 입선, 가작의 네 종류로 하여 각 입상작마다 상장과 부상을 제공한다고 공지하였다.

이는 조선중앙일보사가 1933년 1월 주최한 『명승고적풍속사진현상모집』의 출품 주7과 비교해보면 진일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전조선사진작품모집』은 제도적으로 완비된 공식적인 사진 공모전으로서 출발했던 것이다.

결과

『조선중앙일보』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 일장기말소사건’에 연루되어 9월 5일 무기 정간 처분을 받게 되자, 이 공모전도 무기 연기되었고, 끝내 열리지 못했다. 비록 조선인 언론이 주최한 최초의 공식적인 사진 공모전은 무산되었지만, 1년 뒤인 1937년 조선일보사가 『납량사진현상모집』이라는 명칭으로 사진공모전을 1940년까지 매년 주최하여 그 맥을 이어나갔다.

참고문헌

단행본

최인진, 『한국사진사 1631~1945』(눈빛, 1999)

논문

이경민, 「한국 근대 사진사 연구: 사진제도의 형성과 전개」(중앙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1)
주석
주1

공개 모집한 작품의 전시회. 우리말샘

주2

관청에서 주최하는 전람회. 우리말샘

주3

1910년 8월에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로 창간한 일간 신문. 국권 강탈 후 ≪대한매일신보≫를 강제 매수 하여 발행한 것으로, 국한문판과 한글판으로 간행하였으며 1945년에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고쳤다. 우리말샘

주4

광무(光武) 10년(1906) 9월 1일에 창간된, 통감부(統監府)와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 한글판과 일어판을 각각 발행하였으며 친일의 성격을 띠었다. 일제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광복과 함께 폐간되었다. 우리말샘

주5

정치적·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나라.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원료 공급지, 상품 시장, 자본 수출지의 기능을 하며, 정치적으로는 종속국이 된다. 우리말샘

주6

이 공모전은 『전조선현상사진모집(全朝鮮懸賞寫眞募集)』으로도 불렀다.

주7

"주제는 조선 내 명승고적풍속에 한함, 사진은 기술적이요 선명함을 요함, 상품은 1등, 2등 3등에 따라 박사진정(薄謝進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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