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선사진전람회 ()

사진
의례·행사
1934년부터 1943년까지 경성일보가 주최한 전조선사진공모전을 통해 선발한 사진을 전시한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 전시회.
이칭
이칭
조선사진전람회(1934년), 전조선사진전람회(1934년), 조선사진살롱(1935~1939년), 조선사진전람회(1940~1943년)
의례·행사/행사
시작 시기
1934년
시행 시기
1934~1943년
주관처
경성일보, 전조선사진공모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전조선사진전람회는 1934년부터 1943년까지 경성일보가 주최한 전조선사진공모전을 통해 선발한 사진을 전시한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 전시회이다. 10년 동안 전국 규모의 연례행사로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 공모전이었다. 『경성일보』와 '전조선사진연맹'에서 주최한 일종의 관전 형식의 공모전으로서 일본인이 주도 하였으며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큰 공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예술사진 제도화를 통해 조선을 장악하고자 했던 일제의 문화정책의 일환이었다.

정의
1934년부터 1943년까지 경성일보가 주최한 전조선사진공모전을 통해 선발한 사진을 전시한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 전시회.
연원 및 변천

전조선사진전람회는 1934년부터 1943년까지 10년 동안 전국 규모의 연례행사로 개최되었으며, 일제강점기예술사진을 제도화한 국내 사진계의 최대 주1이었다. 이는 『경성일보』와 전조선사진연맹에서 주최한 일종의 주2 형식의 공모전으로, 당시 주3 조선에서 가장 큰 공적 권위를 자랑하였다. 『경성일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였고, 전조선사진연맹은 『경성일보』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사진가를 중심으로 조직하여 전국의 50여 개 사진 단체가 가입한 조선 내 최대 사진가 단체였다. 이들이 『경성일보』[1934.10.5.] 지면을 통해 공모전의 시작을 알린 이래 그 명칭은 처음 조선사진전람회에서 전조선사진전람회(1934), 조선사진살롱[19351939년], 조선사진전람회[19401943년]로 바뀌었다. 행사명은 여러번에 걸쳐 바뀌었으나 운영 방식은 10년 동안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행사 내용

전조선사진전람회의 운영 및 공모전 작품 심사는 일본인이 주도하였다. 특히 조선총독부 식산국(殖産局) 지질조사소 직원으로 전조선사진연맹을 결성한 야마자와 산조[山澤三造]는 10년간 전조선사진전람회의 대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예술 사진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수상작 대부분도 일본인 위주였으며 한국인의 당선작 비중은 전체 당선작 중 10% 미만에 불과하였다. 이 공모전의 첫 회 출품작은 500여 점이었으며, 입상자의 절대 다수는 일본인이었다. 수상작은 수상소감과 더불어 『경성일보』 지면에 발표되었으며 미스코시[三越]백화점 갤러리[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뿐만 아니라 지역 순회전을 통해 공개되기도 하였다. 전조선사진전람회의 입상은 조선인 사진가들의 가장 큰 목표가 되기도 하였으며 10년 동안 이태경, 최선동, 정도선, 김정래, 박필호, 서순삼, 이형록, 임응식, 조상규, 최계복, 현일영 등이 입선하였다.

전조선사진전람회의 작품 경향은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는 제1회전에서 제4회전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사진계 뿐만 아니라 타 예술계에서도 등장한 ‘향토색[Local Color]’이 두드러졌다. 즉 주4이고 낭만적인 농촌이나 교외의 일상, 조선 고유의 생활 양식 등 ‘향토색’, ‘지방색’, ‘조선색’의 이미지가 주를 이루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자연물을 통한 조형성 탐구, 인물 표현과 같은 경향도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신흥 사진의 영향으로 클로즈 업[Close-up][^5], 주6, 피그먼트 인화[Pigment Print] 등의 기법도 등장하였다.

후기는 1937년 주7 발발 후 제5회전부터 제10회전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시국색’을 강조하여 전시 체제의 일본군의 위용, 평화로운 후방, 비상 시국에 협조하는 후방의 마음가짐과 자세 등을 드러내었다. 즉 주8, 주9, 천인침(千人針), 항공기 등의 상징적 소재나 장소를 통해 시국을 표현한 프로파간다[propaganda][^10] 사진이 입상작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신체제론이 제기되고 국민총력조선연맹이 발족한 1940년에 들어와 ‘시국색’이 반영되지 않은 작품은 심사에서 제외한다고 선포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1944년 전조선사진연맹은 전일본사진연맹 조선지부, 경성사진방첩연맹과 더불어 해체되고 사진보국회로 통합되었다. 10년 동안 지속된 전조선사진전람회는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예술 사진의 경연장이자 사진 작가의 주11으로 예술 사진을 제도화하고자 하였다. 특히 조선사진전람회가 제도적으로 정립한 공모전 형식은 이후 조선인 중심의 공모전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한국 사진 예술의 전개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는 조선총독부가 조선 사진계를 통합, 관리하고 조선의 사진 제도를 통제, 장악하려고 했던 주12 ‘문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최인진, 『한국사진사 1631~1945』(눈빛, 1999)
박주석, 『한국사진사』(문학동네, 2021)

논문

김현지, 「한국 근대 예술사진의 전개 양상 연구 : 「조선사진전람회」를 중심으로」(홍익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6)
유지의, 「한국 예술사진의 형성기를 돌아보기」(『전조선사진연맹 「조선사진전람회」 관련 『경성일보』 자료집(1934~1943)』, 한국사진문화연구소, 2013)
최봉림, 「「조선사진살롱」의 탄생과 전개」(『전조선사진연맹 「조선사진전람회」 관련 『경성일보』 자료집(1934~1943)』, 한국사진문화연구소, 2013)
최봉림, 「야마자와 산조[山澤三造]의 「조선사진전람회」 심사평에 대하여」(『사진문화』 6, 한국사진문화연구소, 2013)

기타 자료

「「조선사진전람회」 전체 입상자 중 한국인 비율」(『사진문화』 6, 한국사진문화연구소, 2013)
「「조선사진전람회」 한국인 입상자 이력」(『사진문화』 6, 한국사진문화연구소, 2013)
주석
주1

공개 모집한 작품의 전시회. 우리말샘

주2

관청에서 주최하는 전람회. 우리말샘

주3

정치적·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나라.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원료 공급지, 상품 시장, 자본 수출지의 기능을 하며, 정치적으로는 종속국이 된다. 우리말샘

주4

농촌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또는 그런 것. 우리말샘

주5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를 가깝게 하여 피사체의 일부를 크게 포착하여 나타낸 화면. 관객의 주관적인 감정을 투사시켜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1910년대 미국의 그리피스 감독에 의해 체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말샘

주6

화상의 날카로움을 약화하여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일. 또는 그런 사진. 우리말샘

주7

1937년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에서 비롯되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일본이 중국 본토를 정복하려고 일으켰는데 1945년에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끝났다. 우리말샘

주8

일본의 국기. 직사각형 모양의 흰 바탕에 붉은 원을 한가운데에 그렸다. 우리말샘

주9

일본에서 왕실의 조상이나 고유의 신앙 대상인 신 또는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 우리말샘

주10

어떤 것의 존재나 효능 또는 주장 따위를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일이나 활동. 주로 사상이나 교의 따위의 선전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11

용문(龍門)에 오른다는 뜻으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크게 출세하게 됨. 또는 그 관문을 이르는 말. 잉어가 중국 황허강(黃河江) 중류의 급류인 용문을 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주12

제국주의를 표방한 일본을 이르던 말. 대체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일본을 이른다. 우리말샘

집필자
오혜리(명지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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