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일영 ()

사진
인물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주의 사진가.
이칭
부운(浮蕓)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
사망 연도
1975년
출생지
서울
주요 작품
무제(재떨이), 무제(사과), 세월
주요 경력
서울인상사진연구회 조직
대표 상훈
수정사진문화상 공로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현일영은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주의 사진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각종 사진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개인적인 순수한 창작 사진 활동에 몰두하였으며, 아홉 번의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익숙한 한국인의 삶과 일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 사진 예술에 대한 기대를 가볍게 배반하는 방법을 통해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선보였다.

정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주의 사진가.
인적사항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호는 부운(浮蕓)이다.

주요 활동

1922년 매동상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3년 YMCA 영어과를 수료하였다. 1926년 23세 때 일본인 회사에 취직하여 만주로 갔는데, 이때부터 카메라를 잡기 시작하였다. 첫 작품은 1929년 일본 아사히신문 주최 국제상업예술사진현상모집에서 2등상을 수상한 「메가네 간유(刊油)」이다. 이후 전만주사진콘테스트에서 준특선으로 입상하였고, 1931년에는 중국 다롄[大連]에서 제1회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1932년 귀국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1933년 종로2가에 현일영사장을 개업하여 초상 사진가로 활동하는 한편, 경성사진학강습원 강사로 재직하였다. 같은 해에 평양에 있는 삼중정 화랑에서 초상 사진을 중심으로 하는 제2회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1935년 일본 도쿄[東京]의 오리엔탈사진학교에 유학하여 예술 사진을 접하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하고 각종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 사진계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9년 대원화랑에서 열린 중견 사진가들의 단체전인 예술사진동인전에 「해녀」 등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그리고 한국전쟁 후부터는 개인적인 순수한 창작 사진 활동에 몰두해 갔다.

1956년 3월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제3회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부터 오늘날 사진계에서 말하는 현일영의 독자적인 사진 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의 대상과 방법론을 포기하고 새로운 방법과 의식으로 접근한 변화의 산물이었고, 국내 사진계에 여러 각도로 많은 반향을 일으킨 전람회이기도 하였다.

1961년 제4회 개인 전람회를 열었고, 1964년 대한민국국전에 사진 부문이 설치되자, 박필호, 이해선, 임응식 등과 함께 초대작가로 추대되었다. 1965년에는 제1회 수정사진문화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72년 제11회이자 마지막 개인 전람회 '부운 현일영 사진소품전'을 개최하였고, 1975년 사망하였다.

작품의 경향과 미학

현일영의 사진은 당시 한국 사진의 한계를 뛰어넘는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는데, 그 현대성은 먼저 사진을 매체로 활용하여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언어적 성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일영 사진의 언어성은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을 긍정적으로 용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대상의 재현을 통해 나타나는 언어적 성격이야말로 사진 매체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내면세계와 사고를 표현하는 데 있어 적절한 소재들을 선택하고 기록하여 영상 언어를 완성하였다.

다음으로 현일영의 현대성은 소재 선택의 획일성을 극복하였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한국 사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재 선택의 획일성에 있었다. 현일영은 소재주의나 걸작주의에서 벗어나 재떨이, 배추, 무, 사과, 고무신, 꽃병, 라디오와 성냥갑, 다다미와 실패, 치마와 버선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로써 사진이 일상생활의 평범한 언어임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많은 원화가 쌓였다. / 이것을 나의 사색의 산물이라고 볼 때, 감흥의 결정이라 볼 때, 한낱 일기 같기도 하다. / 그러나 어찌 한해의 사색과 감흥이 그뿐이랴. / 산물과 결정이 그뿐이랴만은 그것이 생활기록이다. / 나는 작품을 재음미함에 반성을 찾고 추억을 더듬어 쾌락을 느끼랴 한다. "

1963년 개인전 팸플릿에 적어 놓은 작가 노트의 내용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그 행위는 사색과 감흥의 결과물이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사진 작업은 일기와 같은 것이며, 생활의 한 단면이라고 하였다. 또 인화를 하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과정을 통해 지난 삶을 반추하고, 이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언명이다. 현일영 사진의 핵심적 미학이다.

역사적 평가

현일영의 사진은 일제강점기를 풍미한 자연 풍경 위주의 살롱사진 계열에도 속하지 않았고,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진계를 지배한 리얼리즘 사진 계열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우리의 삶과 일상을 오히려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 사진 예술에 대한 기대를 가볍게 배반하는 방법을 통해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구축하였다. 평범한 소재 선택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한 주1, 몽타주, 장시간 노출 등의 기법은 그의 현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가 성취한 사진 예술의 다양성과 미학적 진보는 한국 현대 사진의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주석, 『한국사진사』(문학동네, 2021)
『한국현대사진 60년: 1948~2008』(국립현대미술관, 2008)
박평종, 『한국사진의 선구자들』(눈빛, 2007)

기타자료

「사진개인전 팸플릿」(중앙공보관 화랑, 1963)
「현일영 사진개인전 팸플릿」(중앙공보관 화랑, 1962)
「현일영 사진소품전 팸플릿」(동화백화점 화랑, 1961)
「현일영 사진개인전 팸플릿」(동화백화점 화랑, 1956)
주석
주1

카메라를 쓰지 않고 감광지 위에 직접 물체를 놓고 빛을 비추어 음영(陰影)을 만드는 사진 기법. 또는 그 사진. 우리말샘

집필자
박주석(명지대 교수, 한국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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