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에서 여성 고객을 전담한 한국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다.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개관 당시부터 여성 사진사를 등장시켜 관습의 굴레에 얽혀 있던 여성 고객들에게 사진 촬영의 길을 열었다. 여성이 여성 사진을 찍는다는 선전도 효과가 있었지만, 남자를 출입시키지 않는 장소를 마련해 내외법을 지켜주겠다는 약속도 여성들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여성 사진사가 여성을 촬영한다는 신문 광고와 소문을 접한 여성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남편을 동반하고 사진관을 찾아 사진 문화에 대한 접촉을 실현하였다.
1907년 10월 25일 자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천연당사진관 광고를 보면, 김진애의 활약상을 알 수 있다. “포덕문 밖 신작로 변 김규진 집에 천연당사진관을 건설하고 부인네 사진을 백히옵는데 값도 저렴하고 사진 또한 정교하며 내외 엄숙하고 부인 사진은 여인이 백히오니 사진 백히기 원하시는 부인네는 본당에 왕림 면의 하시옵. 부인 사진사 향원당 고백”이라는 광고가 있다.
최초의 여성 사진사, 그리고 최초의 여성 전용 촬영장을 개설해 여성 고객을 카메라 앞으로 이끌어내려 한 시도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당시 사진관에서는 여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사진사의 역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체적으로 여성에게 사진술을 습득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성 사진사 김진애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하였다.
“전 시종(侍從) 김규진씨 천연당 사진관을 개설 영업한 사(事)는 전보(前報)에 기게(己揭)어니와 비단 염가술교(廉價術巧)라 내빈외객의 촬영 처소를 각설하고 부인 촬영 시에는 부인이 환술(幻術)하여 남인은 일절부득 출입하니 내외 엄숙한 고로 근일에 부인 촬영자와 내외 병탑자(幷搭者)가 일일 답지한다더라.”[『대한매일신보』, 1907. 9. 15.]
당시의 신문은 시민들의 반응을 위와 같이 전하였다. 남녀를 구분하여 대기실과 촬영장을 만들어 놓았으며, 여성 촬영 시에는 남성은 일절 출입이 금지된 상태에서 부인 사진사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 그리고 부부 동반 고객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진애는 자신이 출석하던 새문안교회 교인 신상 조사 때, 직업란에 "사진 박는 것이오"라고 답할 정도로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