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면에 사진을 게재한 『그리스도신문』 1901년 8월 29일자에 실린 서울 흥인지문의 전경 사진이다. 동대문을 배경으로 오고가는 흰 옷 입은 인파를 넣어 촬영한 사진이다. 『그리스도신문』이 사진을 처음 게재했을 때 인쇄 방식은 목판이었다. 목판 인쇄는 먼저 화가가 원본 사진을 보고 나무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려놓으면, 목판사가 그림을 따라 마치 도장을 파는 것처럼 새긴다. 그런 다음 활자로 배열한 본문의 기사와 목판에 새긴 사진을 먹으로 찍는 과정을 거쳐 지면을 만든다. 이 신문의 목판을 이용해 초상사진에서부터 풍경, 건물, 산업시설 등을 촬영한 사진들,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사진도 제작해 지면에 게재했다.
『그리스도신문』은 「동대문도」를 게재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 기사를 덧붙였다. “이 그림은 동대문 그림이니 이 성을 쌓은 후에 정도전이 문 이름을 지어 그 현판에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두 줄로 내려썼고, 이 성은 겹성인데 문루까지라도 심히 견고하고 굉장하여 처음으로 외식골 사람의 눈을 놀랠 만한 거다. 또 이 성문 안에 전기회사 집을 벽돌로 크게 짓고 밤낮 석탄을 피여 전기차를 내왕하게 하더라.”
『그리스도신문』은 목판, 석판, 동판을 이용한 망판 방식의 인쇄 등 다양한 이미지 인쇄 방법을 적용해 사진과 그림 등의 이미지를 지면에 실었다.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의 성격 상 대부분 종교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사진들을 게재해 했다.
예를 들어 1901년부터 1902년 사이 게재된 「철로도」, 「철로탑도」, 「증기선도」, 「추수하는 마차」 등은 당시의 첨단 과학기술을 시각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서양 근대의 세계관과 힘을 전하면서 계몽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이었다. 또 호외 발행의 성격으로 오늘날의 포스터처럼 유명 인물의 사진을 인쇄한 특별각판을 제작해 독자들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창간 기념으로 배포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어진(御眞)과 한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나라 대신 이홍장(李鴻章) 등의 인물사진 판각이 대표적이다. 「동대문도」는 서울의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인 동대문의 모습을 외국인과 지방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게재한 사진이었다.
『그리스도신문』의 사진 인쇄를 담당했던 곳은 배재학당 인쇄부이었다.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가 배재학당을 설립한 이듬해인 1886년 학교 내에 근대식 활판시설을 갖춘 인쇄소로 출발하였다. 원래 한글, 한문, 영어 등 3개 국어를 인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삼문출판사라고 했지만, 일반적으로 배재학당 인쇄소로 불렸다.
「동대문도」는 『그리스도신문』이 한국의 풍물과 건물을 촬영하여 게재한 2번의 사진 기사 중 하나이다. 외국에서 촬영한 사진을 구해 서구의 여러 풍물과 첨단 기술 분야를 소재로 했던 대부분의 사진과는 달리, 매우 드물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담고 있어 19세기 초 서울의 모습과 주변 환경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