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이규완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와 백양사우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당시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 창립에 적극 참여하여 이 단체가 1948년 대한사진예술연구회로 개칭될 무렵에는 회장직을 맡았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창립 이후 사진 관련 정보를 공유할 잡지의 필요성을 느낀 회원들은 도서 제작의 경험을 갖고 있는 이규완을 대표로 하는 조선사진문화사를 설립하고, 편집 주간으로 이동호를 영입해 1948년 7월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사진문화』는 창간사에서 사진예술의 발전과 사진 부문이 민족문화 건설에 공헌하도록 하겠다는 발행 목적을 명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사진가들의 의사소통 역할, 둘째, 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와 상호 교류, 셋째, 아마추어를 중심으로 한 신진 사진가 육성, 넷째, 사진을 통한 민족문화 건설의 실현 등이었다.
잡지의 구체적인 구성과 내용은 한국 사단의 현실에 대한 비평이나 제언을 담은 ‘논단’, 공모전이나 촬영 대회 등에서 선정된 입선작, 수상작을 소개하는 ‘사진 작품’, 사진 활동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의 특징, 사용법, 촬영 기법을 소개하는 ‘정보’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 외에도 기행문, 탐방기, 취재기, 수필, 감상, 인물 소개, 사진계 소식, 해외 사진 정보, 편집 후기 등으로 구성하였다.
『사진문화』의 첫 발행인은 이규완, 편집인은 신오성, 주간은 이동호이다. 그러나 제3호부터는 발행인 이규완, 주간 겸 편집인 이동호 체제로 가다가, 제9호부터 발행인 이규완, 편집인 이동호로 이어졌다. 1948년 7월 28일 통권 제1호를 창간한 이후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25일 통권 제12호로 종간될 때까지 총 12권을 발간하였다.
형태는 12권 모두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4×6배판 크기였고, 총 지면도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24~32쪽으로 구성되었으며, 조판 체제는 가로짜기를 채택하였다. 창간 당시에는 월간지 형식을 표방하였으나 순탄치 않았던 인쇄 및 제작 현실로 부정기적으로 발행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발행인 이규완과 편집을 책임진 이동호가 월북 또는 납북으로 소식이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폐간되었다.
『사진문화』는 광복이라는 시대적, 사회적 특수성 속에서 한국 사진의 현실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근대적 사진의 문화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국 사진사 연구를 위한 사료로서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일본식 사진 용어를 청산하고자 하는 등 외국 사진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한국 사진가들의 관점을 주체적으로 견지하고, 수입품에 의존했던 사진 재료의 국내 자체 공급을 모색했던 광복 직후의 상황을 보여 준다. 『사진문화』는 한국에 사진이 수용된 이후 사진가들에 의해 사진을 논의, 연구하고 사진인의 활동을 반영한 한국 최초의 사진 담론 전용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