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해방 이후 예술사진의 발전을 위해 1946년 3월 5일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연구회는 강령을 통해 설립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첫째는 순수한 사진예술의 실제급 이론 연구, 둘째는 국외 우수한 사진예술을 수입하여 사진의 길을 향상시키는 것, 셋째는 민족의 색채를 국외에 선양하는 것이다. 이론과 창작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고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여 한국의 사진예술을 발전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하겠다. 또한 민족주의 색채를 명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해방 공간의 극심한 이념대립 상황에서 정치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재료상인 서울 명동의 문진양행에 사무실을 두고 설립됐다. 회장은 일제강점기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 대표를 역임한 박영진, 부회장은 백양사우회 대표 이해선이 맡았다. 그밖에도 박필호, 현일영, 이태웅, 이규완, 김정래, 이동호 등 역량있는 사진가들이 간부진으로 참여했으며, 김진수, 이명동, 임석제, 임인식 등 이후 명성을 떨치게 될 신진 사진가 58명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연구회 명칭은 바뀌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제강점기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와 백양사우회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다. 1948년 대한사진예술연구회로 개칭했으며, 1957년 다시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일제강점기 아마추어 사진단체의 방식을 이어받아 월례회와 전국 단위의 공모전을 통해 활동을 펼쳐나갔다. 월례회는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의 사진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 품평회를 갖는 행사로, 친목 도모와 정보 교류, 실력 향상이 목표였다. 공모전은 수상을 통해 사진 창작을 독려하고 저변을 확대하여 후속 세대를 발굴하기 위함이었다. 연구회의 영향력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연구회 주체의 전국 공모전은 전국예술사진공모전으로 국가 차원에서 후원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언론사가 홍보를 담당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해방 이후 한국의 예술사진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하여 전국의 사진가들이 참여한 명실공히 최대 규모의 사진단체였다. 공모전을 통해 예술사진의 발전에 공헌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사진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과거의 예술사진을 답습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예술사진을 기술적 완성도의 측면에서만 이해하려는 문제를 노출시켰으며 입상작들의 주제도 진부하여 살롱사진의 연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