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제는 리얼리즘 사진을 기치로 해방 후 최초의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한 사진가이다. 1948년 8월 서울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해방 후 최초의 개인 사진 전람회인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천항에서 수입 식량을 운반하는 부두 노동자, 소작농, 광부 등 기층 민중을 대상으로 삼았다. 공모전 중심의 예술 사진과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기도 한다. 1950년대를 풍미한 생활주의 사진과 더불어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대표한다.
1918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삼정사진관을 운영하던 서순삼을 만나 사진을 시작하였다. 1934년에는 진남포의 이카리사진관에서 일본인 사진사 가타지마에게 사진을 배웠다.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한국 사진가처럼 공모전 출품을 통해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38년 작 「제련소 소견」이나 1940년 전조선사진연맹이 주최한 말 사진 공모전 수상작 「말」이 대표작이다. 다양한 사진가들과 활발히 교류하였으며, 좌익 계열 사진 단체인 조선사진동맹이나 조광사진구락부와도 교류하였다. 그의 사진을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41년 서울로 이주하여 사진 재료상인 화신백화점 사진부에서 일하였고, 1946년에는 영문판 신문 『서울 타임스』 사진부장을 역임하였다.
임석제의 작품은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공식적으로’ 처음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1950년대는 임응식의 생활주의, 신선회의 리얼리즘 등으로 대표되는 리얼리즘 사진의 시대다. 임석제는 그보다 앞서 1948년 8월 서울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해방 후 최초의 개인 사진 전람회인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 개인전'을 개최하며 리얼리즘 계열 작품을 시도하였다.
그는 총 39점의 작품을 통해 인천항에서 수입 식량을 운반하는 부두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모습을 건강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촬영하여 분명한 관점을 드러냈다. 임응식의 생활주의가 한국전쟁 이후의 빈곤과 궁핍을 상징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적이다.
사진전 공식 팸플릿에는 조선사진동맹 위원장 이태웅이 글을 썼다. 역시 좌익 계열인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한 평론가 김동석은 사진전에 대한 평문을 『조선중앙일보』에 기고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수입식량」[1948], 「끄는 사람」[1948], 「묵호에서」[1948] 등이 있다. 1950년대에는 탄광 노동자를 주제로 「석탄 광부」[1955], 「장성석탄광 입구」[1955], 「휴식-상동광업소」 등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에서 임석제는 일반적인 리얼리즘 사진 촬영법과 달리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여 사진을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