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회는 1956년 8월에 창립됐다. 창립멤버로는 이형록을 중심으로 손규문, 조규, 이안순이 정회원,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안종칠, 조용훈 등 17명이 연구회원으로 참여했다. 창립전은 1957년 4월 "시장의 생태"라는 공동 주제로 동화백화점화랑에서 열렸고, 1958년 4월에 2회전, 1959년 12월에 3회전을 개최했다. 3회의 회원전을 끝으로 이형록은 신선회를 해산하고 싸롱 아루스(Salon Ars)를 새로 창립했다.
신선회는 총 3회의 회원전을 개최했으며, 그와 별도로 개별 회원들은 사협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국제사진전 진출이 활발해지는 1950년대 후반에는 정범태, 이해문, 안종칠, 한영수 등이 각종 국제사진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임응식은 신선회 회원들의 작품이 생활주의 사진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그들의 작품은 내용과 형식 모든 측면에서 생활주의 사진과 큰 차이가 없다. 요컨대 신선회가 추구한 리얼리즘 사진은 명칭만 다를뿐 생활주의 사진과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한편 신선회는 리얼리즘 사진과 일제강점기 ' 살롱사진'의 차별성을 주장했지만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신선회의 리얼리즘 사진은 탄탄한 이론이나 미학적 배경을 토대로 전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공모전 위주로 작품을 발표했던 탓에 일정한 정형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리얼리즘 사진이 형식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은 신선회 내부에서도 제기되어 이후 조형주의 사진으로 이행하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