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시장의 생태를 공동 주제로 제작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형록의 「건설」, 「비오는 가두」를 비롯하여 새벽, 낮, 저녁으로 나누어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 38점이 출품되었다. 이형록은 이 전시를 편집 사진 형식으로 구성하였으며, 이는 한 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뉴스사진과 달리 잡지사진에서 등장했던 주2 형식과 유사했다. 대표적인 출품작으로는 이형록의 「시장의 아침」, 정범태의 「행상」 등이었다.
이 전시는 사진 단체로는 처음으로 리얼리즘을 지향한다고 공식 선언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리얼리즘은 임응식이 1954년에 살롱사진과 리얼리즘 사진을 구분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생활주의로 명칭을 바꿔 사용하였다. 신선회 창립전은 다수의 사진가들이 리얼리즘을 한국사진의 새로운 흐름으로 수용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 전시는 같은 해인 1957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열린 " 인간가족"전과 연계되어 더욱 주목받았다. 전 세계 순회전으로 열린 "인간가족"전은 1950년대 세계의 사진 조류가 포토 주3 형식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전시였다. 신선회 창립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인간가족"전 출품작들과 내용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유사했으므로 리얼리즘 사진이 정당성을 얻었다고 자평하였다. 임응식은 신선회 회원들의 작품이 생활주의 사진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고 평가했으며, 그들의 작품은 사진작가협회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신선회 창립전에 참여했던 회원들은 이후 한국 사진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였다.
신선회 창립전은 195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 사진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상징하는 전시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며, 그 바탕에는 기록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창립전이 보여주었던 새로운 가치의 모색과 도전 의식은 이후 주4 출품 위주의 작품 활동 방식과 아마추어 회원들의 작업 중단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