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회(新線會)가 표방했던 리얼리즘 사진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형록은 리얼리즘 사진이 빈민과 실업자, 걸인 등 궁핍과 빈곤을 상징하는 대상에 국한되어 사회 현실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보여주지 못하고 특정 주제만을 부각시켰다고 비판한다. 또한 주제에만 집착함으로써 구도와 앵글, 화면구성 등 사진의 형식적 문제를 소홀히 하고 결국 조형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싸롱 아루스는 신선회가 표방했던 원칙을 견지하면서 조형성을 갖춘 사진을 추구하자는 취지 하에 새로운 회원들을 받아들여 새로 출범한 단체이다.
싸롱 아루스는 신선회 창립회원이었던 이형록과 정범태의 주도로 이상규, 김행오, 신석한, 김열수가 새로 합류하여 6명이 창립회원으로 출범했다. 1960년 창립한 이 단체는 이듬해인 1961년 첫 전시회를 개최하고 해체됐다. 하지만 회원들은 현대사진연구회를 설립하여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새로운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조형사진의 가능성을 찾아나갔다.
싸롱 아루스의 활동 기간은 일년 남짓으로 짧았지만 창립회원들은 젊은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교류하며 현대사진연구회를 새로 발족시켰다. 이형록을 비롯하여 이상규, 김행오 등은 싸롱 아루스가 기치로 내걸었던 조형성을 추구하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싸롱 아루스를 계승한 현대사진연구회는 각종 좌담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진에 관한 담론을 생산했으며, 회보 『사안』을 발행하기도 했다.
1950년대의 생활주의 사진, 리얼리즘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형성을 추구하며 모더니즘 사진을 시도한 사진 단체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싸롱 아루스가 주장한 ‘조형성’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 미학적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모호하다. 분명 싸롱 아루스는 리얼리즘 사진의 편향성에서 벗어나 조형예술의 다양한 창작 방법론을 끌어들이고자 했으나 리얼리즘 사진의 거대한 장벽에 막혀 더 이상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또한 회원들 대부분이 아마추어 사진가라는 특성 때문에 지속성을 가질 수 없었던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