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이란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고양된 사회의식과 더불어 사진의 기록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사진 경향이다. 1950~60년대 한국사진의 지배적 미학으로, 사진의 본질은 기계적 기록성과 사실성이며 사진은 역사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기록이며 현실의 시공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사진 창작의 경향이다. 일제시기부터 유행한 예술 사진과 영업 사진 등 기존의 사진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생활주의리얼리즘사진은 해방과 전쟁을 겪고 난 후 고양된 사회의식과 더불어 사진의 기록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사진 경향이다. 1948년 임석제의 " 예술사진개인 전람회"에 관한 평가를 하면서 당시 사진가들이나 평론가들은 임석제의 사진을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용어로 규정을 하면서 주1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의 여파로 사회주의라는 용어의 정치적 용법으로 인해 사용이 불가한 상황에서 생활주의사진 또는 리얼리즘사진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으며, 생활주의리얼리즘사진의 개념을 정립한 대표적인 사진가이자 평론가들은 임응식, 구왕삼, 이명동 등이다. 역사가들은 두 용어의 개념적 유사성 때문에 통합해서 생활주의리얼리즘사진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임응식은 아름다운 주2이나 주3을 주4로 삼기보다는 인간 자체와 인간들의 생활 모습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진의 방향을 설정했다. 일제시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주5과의 차별화를 주장하는 것이며 나아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일본 사진에 대한 종속을 청산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싸롱픽츄어파’를 자연 풍물을 주6로 하여 현실을 망각한 관념적 미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진이라고 정의했다. 반대로 ‘리알리즘파’에 대해서는 주7가 지니는 메카니즘의 속성에 기반을 두어서 사실성을 드러내고 작가의 주체성에 기반으로 하여 사회적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왕삼은 한국사진이 사회문화적으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위안에 머무는 ‘ 싸롱 사진’보다는 리얼리즘사진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의 본질이 과학성에 기초한 기계적 예술이므로 사진의 매체적 순수성을 찾는 방법은 객관적인 자연 현상과 인간 생활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여 리얼리즘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동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리얼리즘 사진을 정의하였다. 그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사진의 본질이 사회적 현실의 재현에 기반한 보도성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사진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했다.
임응식은 생활주의를, 구왕삼 이명동은 리얼리즘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한 사진의 본질은 기계적 기록성과 사실성이며 사진은 역사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기록이며 현실의 시공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제가 아무런 중간과정 없이 직접 재현되어야 하며 연출을 거부한 절대 스냅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졌는데, 개념 형성은 일본 사진가 도몬 켄[土門 拳]의 리얼리즘사진 정의에서 영향을 받았다. 절대 비연출의 주8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도몬 켄의 리얼리즘사진 개념은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과 비교했을 때 그 내용이나 형식의 유사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과거의 사진을 대체할 새로운 형식을 갈구하던 한국 사진가들에게 일본의 리얼리즘사진은 살롱사진 스타일을 대체할 방식이자 전쟁의 가혹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고양된 사회인식에 부응할 수 있는 사진 양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생활주의리얼리즘사진은 일제시기부터 유행한 예술 사진과 영업사진 등 기존의 사진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사진의 개념으로 부상한 생활주의리얼리즘사진은 사진 단체들의 활동과 제도적인 뒷받침을 통해 한국 사진의 지배적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예로 " 신선회"는 단체의 활동 목적을 리얼리즘사진의 추구라고 공식 선언한 바 있고, 임응식의 주도로 1952년 12월 부산에서 전국 조직체로 출범한 " 한국사진작가협회"는 창립전을 가지며 생활주의사진을 자신들의 사진의 기치로 내걸었다. 리얼리즘사진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던 이명동이 사진부장으로 재직한 『동아일보』는 1963년부터 " 동아사진콘테스트"를 주최하여 본격적인 아마추어 사진가의 주9이자 생활주의리얼리즘사진의 유행을 1970년대까지 꾸준히 선도한 핵심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1957년 서울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린 뉴욕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기획의 「 인간 가족[Family of Man]」 전시는 당시 사진가들로 하여금 리얼리즘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확신하게 했고, 생활주의리얼리즘사진의 유행을 부채질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