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진작가협회는 1961년 전국에 산재한 사진 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 작가 단체이다. 1977년 한국사진작가협회로 개칭했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공모전을 주도하며 1970년 이후 여러 사진 단체를 포괄하는 중심 단체로 자리잡았다. 1982년부터 대한민국사진전람회를 주관했으나, 공모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 위세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1961년 5월 22일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 제6호인 “모든 정당 사회단체 해체”가 발표된 후, 5월 31일자로 개정된 “정치성이 없는” 사회단체의 “재등록과 신규등록” 허가에 따라, 같은 해 12월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기관으로 한국사진협회가 창립되었다.
군사 정권의 획일적인 예술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사진협회는 관변 단체의 지위를 부여받았고 공적 자금을 지원받았다.
한국 최대의 사진 단체인 한국사진협회는 오랜 기간 사진계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의 무대였다. 군사 정권 이전에 공모전을 통해 입지를 다진 일부 사진가들은 상업 사진인과 같은 단체에 속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창작 사진 예술을 추구한 단체는 임응식이 주도한 주1이며, 상업 사진인을 대변한 단체는 정희섭이 이끈 전국사진가연합회였다. 최대 다수의 사진인 통합체를 원한 군사 정권의 통합 방침을 좇아 1960년대 내내 총회의 주도권은 정희섭에게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정희섭은 1960년대부터 1970년까지 무려 9대에 걸쳐 한국사진협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갈등은 196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사진부가 설립되면서 심화되었다. 한국사진협회의 방침과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각 계파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대한 비판과 불참을 반복했다. 1970년 이후 한국사진협회는 여러 사진 단체를 포괄하는 중심 단체가 되었으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1982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사진부를 대신해 대한민국사진전람회를 주관하게 되면서, 공적인 권위를 부여받은 단체의 위상은 오히려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공모전의 시대가 저물어 가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다양한 공모전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심사해오던 한국사진협회는 공모전의 위상이 약해되면서 과거의 권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977년 한국사진작가협회로 개칭한 뒤 오늘날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