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창작사진협회는1964년, 임응식의 주도로 사진의 순수 예술성을 지향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며 사진예술의 수준을 향상할 것을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임응식은 1952년 본인의 주도로 창립한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재건해 ‘한국창작사진협회’를 설립하였고, 한국사진협회와 경쟁적으로 공모전과 협회전을 주최하며 사진 및 사진인의 예술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국전 사진부’ 설립과 그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71년 한국사진협회와 통합했다.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임응식의 주도하에 설립된 ‘ 한국사진작가협회’는 1961년 ‘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 제6호에 의해 해체된다. 1961년 12월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기관으로 창립된 관변단체 한국사진협회의 지배권을 영업 사진가, 사진업 종사자의 지지에 힘입어 정희섭이 장악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64년 임응식은 해체된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재건하여 ‘한국창작사진협회’를 창립한다. 한국사진협회의 대항 단체로서 한국창작사진협회는 무엇보다도 예술사진에 헌신하는 ‘창작사진가’ 단체임을 표방하면서 영업 사진 종사자를 주축으로 삼은 ‘사협’과 차별을 꾀했다.
한국창작사진협회는 196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제7부, 사진부의 설립에 기여했으며, 그 지위 향상에 노력했다. 아울러 ‘국전 사진부’를 주도하기 위해 한국사진협회와 이해선이 주도한 ‘대한사진예술연구회’와 대립했다.
9대에 걸쳐 한국사진협회의 이사장직을 연임한 정희섭이 1970년 물러나고, 당시 한국 최대의 사진기업인 새한칼라의 소유주 김종양이 1971년 제10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한국창작사진협회는 한국사진협회와 통합했다. 한국창작사진협회는 한국사진협회의 주도권을 그 내부에서 장악하고자 스스로 해체한 것이었고, 임응식은 1973년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임응식의 한국창작사진협회가 한국 사진사에서 갖는 의미는 한국사진협회의 주도권 싸움을, ‘창작사진가’와 ‘영업사진사’의 대립으로 비화했다는 점이다. 임응식에 따르면, 창작 사진의 대표자가 한국 사진을 대표하는 한국사진협회를 운영해야 사진의 지위 향상과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상대방을 폄훼하기 위한 논지였지만 한국 사진계는 이 갈등을 통해 창작 사진과 상업사진의 구분에 대한 모더니즘적 사고를 내면화했다. 이 구별을 통해 사진과 사진인의 예술적,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생각을 심화시켰고, 그 지위 향상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했다. 1964년 ‘국전 사진부’의 설립 그리고 1970년대까지 계속된 ‘국전 사진부’의 지위 향상을 위한 갈등과 제안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국창작사진협회가 불 지핀 이 주장이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