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임응식이 강릉에서 결성한 사진인 모임으로 알려진 강릉사우회는 매월 회원의 사진을 품평하고 사진교육을 시행하는 월례회를 개회하며, 야외 모델 촬영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36년 강릉사우회는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진조직 연합체인 전조선사진연맹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따라서 강릉사우회는 여러 사진 단체와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사진인 모임이나, 이 모임이 한국 사진사에서 언급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기존 조선인 사진 단체들이 주로 사진관의 사진사들로 구성된 데 반해, '강릉사우회는 예술사진을 목표로 결성된 모임이었다. 이들은 사진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는 과거의 단체, 예를 들면 1926년에 조선인 영업 사진사들이 결성한 경성사진사협회와는 달리 사진을 자발적인 예술의욕과 자기표현의 매체로 탐구한 사진그룹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둘째, 강릉사우회는 조선인 임응식이 주도한 단체로, 한국 사진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이형록도 이곳의 회원이었다. 당시 한반도에 존재한 모든 예술사진 그룹은 일본인이 조직하고 지도하였다. 그러나 임응식에 따르면, 조선인 주도로 사진예술을 목적으로 결성된 사진그룹은 '강릉사우회'와 최계복이 주도한 대구아마추어사우회 뿐이었다.
임응식의 주장에 따르면 강릉사우회는 한국인이 최초로 만들고 주재한 예술사진 단체이다. 그러나 임응식이 강릉사우회에 부여한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1979년 1월에 발간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보인 『사협』 제18호와 1979년 5월에 발간된 『사협』 제20호에서 서상덕은 임응식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며 “강릉사우회는 그 발족의 일자가 분명치 않지만 최초의 회장은 이곳에서 영업사진관을 개업 중이던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응식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1937년 11월 1일 자 『동아일보』의 「강릉사우회 월례회」 기사에서 “동회를 이끌고 나가는 임응식”이라는 문구와 동년 5월 15일 자 『경성일보』의 「강릉사진전 비상한 성황」이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당시 전조선사진연맹의 각 지부장은 가맹단체의 회장이 맡게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