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진동맹 ()

사진
단체
1947년 6월, 좌익 성향의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 단체.
단체
설립 시기
1947년 6월
해체 시기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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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선사진동맹은 1947년 6월 좌익 성향의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던 살롱사진의 경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진예술의 발전을 도모했던 사진인 약 100여명이 동참하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실현 및 노동자의 해방과 전인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삼고 사회주의자로서 사진가의 역할을 제시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을 내세워 좌익 계열 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회원들의 월북과 함께 와해되었다.

정의
1947년 6월, 좌익 성향의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 단체.
설립 목적

조선사진동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지지하는 좌익 성향을 가진 사진가들이 1947년 6월에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해방 이후 우익의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대표적인 사진 단체 조선사진예술연구회와 일제시대 잔재로 남은 구시대적인 살롱사진의 경향에 반감을 느낀 사진인 약 100명이 동참하였다. 서울 YMCA 회관인 종로 기독교 청년회관 강당에서 결성대회를 개최하고 위원장 이태웅(李泰雄), 부위원장 이용민(李庸民), 서기장 김진수(金珍洙)를 선임했다. 조선의 사진 예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데에 뜻을 모았으며 문련(文聯) 에 가입할 것과 미소공동위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결의할 것을 촉구했다. 동맹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실현함으로써 ‘노동자의 해방’과 ‘전인민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었다.

특히 위원장 이태웅은 동맹 결성 이후 진정한 사진 예술의 발전을 위해 과거와 현재를 엄중히 비판하고 미래를 향한 노선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주의자로서 사진가의 역할을 명확히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는 사진의 개념에 투쟁적 예술성과 대중적 표현성을 강조하는 한편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조하였다. 우익 민족주의 성향의 기성 사진가들에 의해 결성된 조선사진예술연구회와 차별화를 시도하며 조선사진동맹은 혁명적인 사진인 집단이 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주요한 낭만적인 예술사진의 경향을 '살롱사진’으로 폄하하였다. 즉, 사진에 있어서 ‘향토색’의 시각적 재현을 목표로 자연풍경이나 풍속을 주제로 삼던 예술사진의 경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기존의 사진경향과는 다른 대중 계몽을 통해 인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의 방향을 사진에도 적용하였다.

변천 및 현황

조선사진동맹은 서울 을지로 2가에 있던 허바허바사장을 본부 사무실로 사용했다. 동맹의 서기장을 담당하던 김진수와 김주성이 합작으로 설립하고 운영한 사진관이었다.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 일본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같이 사진 공부를 했던 인연이 있었으며, 김진수의 제안으로 허바허바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48년 조선사진동맹의 하부 조직으로 조광사진구락부(朝光寫眞俱樂部)를 조직하였다. 조광사진구락부는 대구사우회, 부산사진예술연구회 등을 포섭하여 지방 도시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1948년 12월 미국공보원 화랑에서 창립전을 개최하는 등 서울과 지역을 아울러 활동을 전개했다.

주요 활동

영화 및 사진 잡지의 출판과 8·15기념 제1회 사진전 개최를 활동 목표로 삼기도 했다. 한편, 조선사진동맹 활동의 최대 성과는 해방 이후 최초의 개인전이었던 1948년 8월 서울의 동화백화점화랑에서 열린 제 1회 임석제 예술 사진 개인전이었다. 임석제가 전시회에 발표한 사진들은 기존 일제강점기 예술 사진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여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예술 패러다임과 195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사진동맹은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을 내세워 좌익 계열 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회원들의 월북과 함께 와해되었다. 조선사진동맹 회원 중 월북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가로는 김진수, 이태웅, 박기성(朴基成), 이창규(李昌圭), 염병택(廉秉澤) 등이 있다. 영광(永光)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동맹의 총무를 맡았던 이창규, 동맹의 연락부장 염병택 등 핵심 인물들은 남로당 당원이었고, 월북해서 북한 정권 하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의의 및 평가

조선사진동맹은 해방 이후 좌익 성향을 가지고 보수적인 성향의 사진 단체와 대립하며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하고자 했던 향토색이 짙은 기존 예술사진의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김진수의 「마음의 뜰」이나 한상희(韓相熙)의 「휴식」 같은 작품이 살롱사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예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주석. 『한국 사진사』(문학동네, 2021)

논문

홍성후, 「조선사진동맹과 허바허바사장」(『근대서지』 27, 근대서지학회, 2023)
집필자
오혜리(명지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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