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설립된 오리엔탈사진공업소의 주력 제품은 유리 원판이나 인화지 같은 감광유제였으며, 주 소비자는 사진관 운영자들과 사진사들이었다. 따라서 사진사들에게 제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영업 사진가를 육성할 목적으로 오리엔탈사진학교를 설립하였다. 강의에는 오리엔탈사진공업소의 제품을 이용하였으며, 개교 당시에는 회사에서 발매한 감도 50의 건판을 수업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강사도 일부 전임교원들을 제외하고는 오리엔탈사진공업소의 제품 개발 담당자들이나 홍보 직원들이 담당하였다.
입학 자격은 사진관 3년 이상의 경험이 있어야 하였으며, 사진관 업주가 아닐 시에는 경력증명서를 제출해야 하였다. 경력이 없는 사람은 입학 전에 학교 부설 ‘실기연구강습회’ 과정을 수료하면 입학이 허가되기도 하였다. 예외적으로 학교가 인정할 만한 사진 기술을 가졌거나 보통학교 졸업생으로, 사진 경력이 있는 경우에는 입학할 수 있었다.
학교 수업 기간은 3개월이었다. 처음에는 매년 1회 모집하였지만, 입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매년 4월7월의 봄과 9월12월의 가을 연 2회 개교하였다. 이외에도 하기 강습회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정과 사진관 운영자 대상 코스가 별도로 진행되었다. 일본인 졸업생으로는 인물 사진 작품을 발표한 하야시 다다히코, 오리엔탈사진공업소의 홍보지지 『포토타임즈』의 편집을 담당하며 신흥 사진을 정착시킨 기무라 센이치 등이 있다. 전위 사진가로서 포토 데생 기법으로 유명한 에이 주2도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당시 사진을 배우려는 한국인들은 1910년에 설립된 YMCA 사진과에 입학하였으나, YMCA 사진과는 1933년에 폐과되었다. 사진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인들에게 오리엔탈사진학교는 사진의 최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한국인 졸업생으로는 사진관 운영 경력이 있었던 현일영(玄一榮)과 추상화가인 유영국(劉永國)이 있다. 유영국은 실무 경험이 없어 예비 학교인 실기연구강습회를 수료하고 입학하였다.
이 밖에 한국인 졸업생으로 부산의 사진관 ‘명광사’를 운영하였던 조상범, 강경에서 ‘전원사진관’을 운영하였던 유석영, 철원 ‘영화사진관’의 조배현, 서울 ‘반도사진관’의 이종석, 그리고 명동에서 ‘하야시사진관’을 운영하였던 임정식 등이 있다. 8·15광복 이후 좌익 계열 사진 연합체로서 1947년에 창립한 ‘ 조선사진동맹’의 핵심 구성원이자, 합작으로 ‘ 허바허바사장’을 운영하였던 김진수와 김주성 또한 오리엔탈사진학교에서 1939년에 함께 수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