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술』은 1966년 8월 대한사진문화사에서 창간하여 1967년 4월까지 발행한 사진 전문 잡지이다. 이전에 발간되었던 두 종의 『사진문화』[1948, 1956]와 내용이나 형식이 매우 유사하였지만, 해외 사진계에 관한 관심만큼은 그보다 더 적극 표출되었다. 1960년대 후반 한국 사진계의 작가와 작품, 사진이 처했던 사회문화적 상황을 적실히 기록한 사진 전문 잡지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사진문화사가 1956년에 창간한 『사진문화』의 발행인 조명원은 1957년 재정적 어려움으로 『사진문화』가 폐간되자, 한국사진문화사 명의로 한국 최초의 사진 연감인 『한국사진연감』과 기술 입문서를 발행하였다. 이어 변종관과 천재성의 재정적 후원으로 『사진예술』을 창간하였다.
『사진예술』의 발행인이자 회장이었던 변종관은 당시 국산 인화지와 현상 약품 등 사진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대한사진화학공업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사장 천재성은 충무로의 미야사(美也社)라는 DP&E점을 중심으로 29개 체인점을 거느린 사진업계의 성공한 사업가였다. 즉, 잡지를 낼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조명원은 사진업계의 성공한 사업가 변종관과 천재성을 설득하여 잡지를 창간하였는데, 그중 천재성의 기여가 컸다고 전해진다.
『사진예술』의 창간호 판형은 257×182㎜[4×6배판]이었고, 분량은 124면 내외였다. 판권란에는 발행인 변종관, 편집인 조명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발행처인 대한사진문화사 소개란에는 회장 변종관, 사장 조명원, 부사장 천재성, 편집위원 신상우, 편집부장 김열수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예술』은 이전에 발간되었던 두 종의 잡지 『사진문화』[1948], 『사진문화』[1956]와 내용이나 형식이 매우 유사하였다. 그것은 편집인 조명원이 1956년의 『사진문화』의 발행인이었고 『사진예술』 발간의 전 과정을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부화하는 병아리를 게재한 『사진예술』 창간호 표지 사진은 『사진문화』[1956] 창간호의 병아리 부화 사진과 동일한 것으로, 이는 잡지의 창간을 의미하였다. 『사진예술』은 이 창간호에서 제1회 ‘사진예술종합상’ 제도를 운영하였고 ‘한국 사진사 편찬’, ‘사진 모델 모집’, ‘사진예술동우회 회원 모집’ 등의 사업을 계획하였다.
특히 『사진예술』은 해외 사진계에 관한 관심을 적극 표출하였다. 외국의 사진 잡지나 사진 서적의 내용을 발췌하여 연재하였고, 국내 콘테스트에만 출품할 것이 아니라 외국과의 사진 교류도 활발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반면에 해외 사진계의 흐름을 수용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한국 사단의 입장, 국내 사진가들의 생각이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하였다. 또한 주명덕의 「혼혈 고아 포토에세이를 마치고」와 같이 사진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도 보여 주었다. 이로써 사진가들의 시각이 현대사진과 사회의 관계에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사진예술』은 제7호까지 발간되었지만 실제로는 제4호와 제5호의 합병호, 제6호와 제7호의 합병호로 총 5권이 발간되고 폐간되었다. 천재성은 『사진예술』 제3호를 발행한 후 조명원을 해고하고 자신이 편집인이 되어 잡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월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휴간 신청도 없이 3~4회를 발간하지 못한 『사진예술』은 당시 잡지에 관한 법령에 의해 자동 폐간되었다. 또한 기존의 제호를 다시 사용할 수 없었던 법령으로, 이후 『사진예술』은 『카메라예술』로 제호를 바꾸어 1967년 10월 재창간되었다.
『사진예술』은 사진 예술론을 연재하거나 사진의 예술성, 한국 사단과 세계 사진과의 관계 등을 제고하면서 작품 비평과 이론의 공동의 장으로 기능하였다. 1960년대 후반 한국 사진계의 작가와 작품, 사진이 처했던 사회문화적 상황을 적실히 기록한 사진 전문 잡지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