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사진부는 1964년 '제1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신설된 후 1981년까지 총 17회 개최된 관전(官展) 형식의 사진 공모전이다.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자 작가의 예술적 입지와 명예를 공인받는 공신력 있는 공모전으로 자리매김하여, 한국사진이 미술과 동등한 지위에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도록 하였다. '동아사진콘테스트'와 함께 관전과 민전, 예술 사진과 리얼리즘 사진이라는 경쟁과 견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나라 사진 예술의 발전을 견인한 공모전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1949년 문교부 고시 제1호로 창설된 '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 이후, '국전'에 사진부를 설립하기까지 10여 년의 기간이 걸렸다. 사진계의 주요 인사 및 단체들은 미술계의 반발에 맞서 사진부 설치를 위한 청원서를 관계 당국에 제출하고 기고문을 일간지 및 잡지에 게재하는 등 '국전'에 사진 부문이 가입되도록 그 당위성을 설파하였다. 그 결과 1964년 10월 '제13회 국전'에 사진부가 신설되었다.
그러나 ‘국전’ 사진부는 설치할 때에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폐지될 때까지 굴곡진 역사적 노정을 거쳤다. 즉 1970년 사진부는 건축부와 함께 '국전'에서 제외되었고, 1971년부터 1973년까지는 '국전'에서 분리되어 '대한민국 건축 및 사진 전람회'로 개최되었으며, '국전'이 봄과 가을로 나뉘어 치러진 1974년부터는 봄 '국전'에 편입되었다. 1980년에는 주1 주관의 민전(民展)으로 이양되었고, 1981년 ‘제30회 국전’ 이후 '국전'이 해체되자 사진부도 함께 폐지되었다. 이는 국가 기관이 예술의 생산, 평가, 유통을 주도하겠다는 전근대적 발상과 시대착오적 정책의 결과였다.
‘국전’ 해체 후로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었고, 1986년부터는 이를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게 되었다. 이에 ‘국전’ 사진부 역시 1982년부터 2009년 제28회까지 '대한민국사진전람회'라는 명칭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주관으로 열렸다. 2024년 현재는 '대한민국사진대전'으로 불리며 제42회를 맞았다.
‘국전’ 사진부는 가장 권위 있는 신인 작가의 주2이자 작가의 예술적 입지와 명예를 공인받는 공신력 있는 주3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살롱 주4에서부터 조형적인 사진으로 통칭되었던 모더니즘 사진, 특히 추상적이거나 실험적인 경향의 사진들까지 서로 경쟁하며 한국 예술 사진의 지형과 미학을 보여준 예술 사진의 장이었다.
주요 일간지들은 사진부의 운영 · 심사위원, 초대 · 추천작가, 수상자 명단 등을 발표하였고, 사진 잡지들은 입상작을 게재하여 사진 작품의 역량을 객관화하고 사진 예술에 매진하는 사진가들의 작가 의식을 드러냈다. 사진부에서는 전시회를 개최하고 『국전 도록』을 발행하였다. 신현국의 「생존」이 제1회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한 이래, 총 6천여 점의 출품 수를 기록하였고 총 21명의 최고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국전’ 사진부는 당시 주5 사진과 경쟁하는 예술 사진의 장으로서, 한국 사진이 미술과 동등한 지위에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도록 한 가장 공신력 있는 공모전이었다. 따라서 ' 동아사진콘테스트'와 함께 관전과 민전, 예술 사진과 리얼리즘 사진이라는 경쟁과 견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나라 사진 예술의 발전을 견인하였다. 그러나 잦은 운영 제도의 변경, 초대 작가와 추천 작가의 선정 문제, 심사의 편파성 시비 등으로 빈번한 내홍을 겪고 국가 문화 행사에 사진을 참여시키는 등 관전의 한계를 드러내다가 결국 민전으로 이양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전문 사진가와 아마추어 사진가의 분화가 뚜렷해지고 예술 사진의 구심점이 공모전에서 벗어나자 주류 사진 담론에서 멀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