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진의 개념에서 보면 ‘오브제(Objet)’ 또는 ‘구성사진[Constructed Photography]'과 같은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대상을 프레임으로 잘라내 찍는 전통적인 사진과는 다르게 사물 즉 오브제를 수집하거나 만들어서 배치한 뒤에 이를 찍어 사진을 만들고 오브제는 다시 해체하는 방식이었다. 사진가 스스로 현실 자체를 가공하고 연출해 내어 이를 다시 촬영하는 일은 현대사진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 중의 하나이다. 정해창의 ‘인형을 주제로 한 정물’ 연작 사진은 이런 현대성을 이미 성취했던 작업이었다.
현존 작품은 1995년 사진가 구본창이 정해창이 남긴 네거티브 유리원판을 바탕으로 인화해서 만든 사진으로, 20×24인치 크기의 젤라틴실버프린트 작품이다.
작품사례 1 : 테이블을 놓고 배경으로 커튼을 친 다음 소품들을 배열한다. 뒤로는 유리 공예품을 배치하고 옆으로는 알파벳 문자와 이미지가 인쇄된 서양의 책 내용 부분을 놓고, 앞에는 담배 파이프와 재떨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반라의 석고 여인상을 배열해놓고 찍은 사진이 있다. 이런 사물들은 우리 전통 사회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고, 당시로 보면 신식 생활의 요소들이며 서양 문명을 상징하는 아이콘들이었다.
작품사례 2 : 우리 전통 삶의 아이콘인 인형들과 당시 신문물이라 불린 근대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사물들을 같이 배치한 경우도 있다. 여기서 사용한 인형들은 정해창이 스스로 수집했거나 직접 만든 것으로 다양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백과사전이나 유리 공예품 등은 근대화의 시기를 사는 지식인으로서 정해창 자신이 소유하고 있거나 사용 중인 생활 주변의 소품들이었다. 크게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화면에 배치해서 찍는 방식으로 정해창은 물밀듯 밀려오는 서구 문명과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삶의 방식과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당대의 문명사적 상황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적당한 연출과 가공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 정해창은 당시 첨단 서양 학문과 예술을 공부했고, 우리의 전통 미학과 역사를 성찰한 학자이자 예술가이다. 폭 넓은 지식과 종합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과 문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안타깝게 여긴 선각자이기도 했다.
그의 사진은 가장 서구적인 매체인 사진을 통해 우리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흔들리고 왜소해져가는 한국인의 전통적 삶 그리고 문화적, 사회적 현실과 갈등 구조의 본질을 피사체의 구성과 연출이라는 혁명적 사진 방법론으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