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풍속사진은 20세기 초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사진 엽서와 예술사진의 대표적인 주제로 한국의 주1 및 일반인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사진을 뜻한다.
풍속의 개념은 시대별로 그 주제나 사회적 의미가 다양하게 변용되었으며 풍속화 및 풍속 사진의 문화적 중요성도 역사적 맥락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한국의 미술사에서 풍속화는 18세기 후반 주목을 받은 대표적인 회화의 장르로서 일반인들의 생활과 관습 등을 주제로 그린 회화를 말한다. 한편, 19세기 후반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서양 및 일본 등과 교류가 증가하면서 풍속화는 수출화로서 외국인들이 주소비층이 되어 수요가 증가하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기에 당시 한국에 있던 사진관들은 한국의 풍속 및 생활상을 보여주는 모습을 촬영하고 이를 다량으로 인화해서 판매하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이국적인 것을 추구하며 다양한 풍속 사진을 기념품으로 구입하거나 조선의 풍속과 일상을 직접 사진으로 촬영하기도 하였다. 인쇄 기술이 발전하면서 풍속을 재현한 그림이나 사진은 엽서, 여행책자, 민속지학 관련 자료 등 한국에 관한 다양한 저작물에 복제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상업적인 목적 하에 제작된 풍속 사진들은 대량으로 유통되어 서구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정형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사진엽서의 활성화와도 관계가 있는 조선 풍속 사진은 1900년의 사제엽서 허가 이후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량으로 복제되어 대중적으로 유통되었다. 농상공부의 상공국에서 우표 및 엽서와 상표를 제조하기 위해 1896년 인쇄소를 설치하고 1898년 9월에 독일제 석판 기계를 도입하였으며 1899년 9월에 일본인 제판 조각사들 3인을 초빙하여 1900년 4월 4일 무렵 13종의 우표와 엽서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인 우체 고문으로 사진 엽서 발행을 건의한 바 있는 클레망스(E. Clemencet)는 이들 석판 인쇄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프랑스에 직접 의뢰해 제작할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 조선에 프랑스어 교사로 와 있던 샤를 알레베크가 촬영한 궁궐과 풍속 등의 기록 사진 원본을 프랑스로 보내 인쇄하여 총 48장의 사진 엽서가 제작되었다. 이는 한국 주2사 최초의 사진엽서로서 알레베크 사진 엽서로 알려져 있다. 그가 촬영한 한국의 모습은 구한말 풍속사에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상업 사진관에서도 다양한 풍속을 제재(題材)로 한 사진엽서를 제작하였다. 일례로 1901년 일본인이 경영하는 서울의 옥천당 사진관은 풍속, 경치를 담은 사제 사진 엽서를 제작 발매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예술 사진의 주요 주제는 한국의 자연 풍경과 풍속이었다. 대표적인 예술 사진 작가인 정해창은 한국적인 서정성을 담은 풍속을 재현한 다수의 사진 작품으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29년 한국에서 최초의 개인 사진전을 개최한 작가이기도 한 정해창은 총 4회에 걸친 사진전에서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다양한 풍속 사진을 선보였다. 그의 풍속 사진에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 주3에 장작을 싣고 가는 인물, 밭을 개간하고 있는 농부, 지게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 저녁 무렵 소를 몰고 가는 농부의 뒷모습, 새끼줄을 꼬고 있는 사람, 그네를 타는 여인, 갓과 두루마기를 입고 걸어가는 사람,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시장의 사람들 등 보통사람들의 일상과 풍속을 담은 모습들이 포착되어 있다.
정해창의 풍속 사진들은 영조, 정조 시대를 전후하여 나타난 조선 고유의 독자적인 미술 사조인 풍속화와 매우 유사한 소재와 성격을 갖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사실주의적 경향에 바탕을 두고 있어 과거의 생활과 풍속을 이해하는 기록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모두 성취한 문화적 산물이라면 정해창의 풍속 사진 또한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한국인들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재현해낸 예술적, 기록적 가치를 갖는 풍속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풍속이미지의 확산은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시대적 특수성과도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풍속이라는 소재는 당시의 향토색 담론과 관계를 갖고 있으며 각종 사진 행사와 주4에서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소재였다. 일제강점기 풍속을 담은 조선풍속사진 이미지의 확산은 주5를 바라보는 주6의 시선과 주7 치하 민족의 주8을 지켜내려는 민족주의적 시선의 교차가 만들어낸 문화적 표상으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