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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방은 조선시대 왕실의 일부였던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 독립한 궁가(宮家)의 통칭이다. 1사7궁(一司七宮)에 해당하는 내수사, 수진궁, 어의궁, 명례궁, 용동궁, 육상궁, 선희궁, 경우궁을 비롯하여 68개가 있었다. 그 존속기간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다. 왕패(王牌)나 별사문적(別賜文蹟) 등을 보유한 궁방이 있었다. 후궁·대군·공주 등 해당 인물의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설궁(設宮), 제사를 지내는 제사궁(祭祀宮)도 있었다. 궁방에게는 토지와 어전(漁箭)·염분(鹽盆)·산림천택(山林川澤) 등이 절수(折受)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궁방 (宮房)
궁방은 조선시대 왕실의 일부였던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 독립한 궁가(宮家)의 통칭이다. 1사7궁(一司七宮)에 해당하는 내수사, 수진궁, 어의궁, 명례궁, 용동궁, 육상궁, 선희궁, 경우궁을 비롯하여 68개가 있었다. 그 존속기간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다. 왕패(王牌)나 별사문적(別賜文蹟) 등을 보유한 궁방이 있었다. 후궁·대군·공주 등 해당 인물의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설궁(設宮), 제사를 지내는 제사궁(祭祀宮)도 있었다. 궁방에게는 토지와 어전(漁箭)·염분(鹽盆)·산림천택(山林川澤) 등이 절수(折受)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건저대리는 1721년(경종 1)에 노론 일파가 연잉군을 세제로 추대하고, 대리청정권을 주고자 주동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다. 희빈 장씨가 사사되자,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즉위한 후를 염려한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世弟)로 추대하였다. 아들이 없던 경종은 1721년(경종 1) 8월 세제를 책봉하였다. 10월에 노론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였다. 경종은 대리청정을 허락했다가 3일 만에 환수하였다. 왕세자를 세우는 건저와 대리청정으로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이후 소론에 의한 신임옥사가 일어나 노론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건저대리 (建儲代理)
건저대리는 1721년(경종 1)에 노론 일파가 연잉군을 세제로 추대하고, 대리청정권을 주고자 주동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다. 희빈 장씨가 사사되자,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즉위한 후를 염려한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世弟)로 추대하였다. 아들이 없던 경종은 1721년(경종 1) 8월 세제를 책봉하였다. 10월에 노론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였다. 경종은 대리청정을 허락했다가 3일 만에 환수하였다. 왕세자를 세우는 건저와 대리청정으로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이후 소론에 의한 신임옥사가 일어나 노론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1720년 6월부터 1722년 6월까지 3년여에 걸친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 관한 사실을 『승정원일기』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역사서.
수사비록 (隨事備錄)
1720년 6월부터 1722년 6월까지 3년여에 걸친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 관한 사실을 『승정원일기』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역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