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송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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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친일파 이완용과 이용구의 암살을 계획하였으며, 의용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이걸 (金履杰)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 이완용과 이용구의 암살을 계획하였으며, 의용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06년에, 이용구와 송병준이 일진회의 기관지로 창간한 일간 신문.
국민신보 (國民新報)
1906년에, 이용구와 송병준이 일진회의 기관지로 창간한 일간 신문.
190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단체.
유신회 (維新會)
190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단체.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융희 (隆熙)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중추원 (中樞院)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