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희

  • 역사
  • 제도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
제도/법령·제도
  • 시행 시기1907년 8월 3일
  • 시행처친일내각
  • 폐지 시기1910년 8월 29일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0월 2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정의

대한제국기,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

내용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순종(재위: 1874~1926)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완용 친일내각은 1907년(광무 11)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1907년(광무 11) 7월 16일, 내각회의에서 황제 폐위를 결정한 이완용과 송병준 등 친일내각은 고종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7월 18일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중명전에서 고종에게 압박을 가하여 마침내 황태자 대리의 조칙을 얻어 냈다. 7월 19일에는 서둘러 중화전에서 황태자 대리를 축하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환구단, 종묘, 영녕전, 경효전, 사직에 이를 알리는 고유제(告由祭)까지 지냈다. 고종은 단지 황태자 대리를 승인한 것이지만, 7월 21일에 태황제(太皇帝) 존봉도감 설치가 결정되는 등 고종의 퇴위가 기정사실이 되었다.

7월 22일에 친일내각의 대신들은 순종을 황태자 대리가 아닌 황제라고 부르기로 건의하였고, 총리대신 이완용은 연호의 개정을 발의하였다. 8월 2일에 내각에서 새 연호로 융희(隆熙)와 태시(太始)를 상주하였고, 이 가운데 융희로 결정되어 다음날부터 사용하였다.

같은 날 태황제의 칭호는 덕수(德壽)로 결정되었고 이어서 순종황제 즉위식이 강행되었다. 원래는 궁내부 장례원의 건의에 따라 경운궁 즉조당에서 즉위식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양관(洋館)인 돈덕전(惇德殿)으로 변경되면서 모든 의장물도 신식으로 마련하여 8월 27일, 순종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구한국관보』

  • - 『순종실록』

  • - 『조칙』

  • 단행본

  • - 서영희, 『대한제국정치사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 이태진,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보호조약에서 병합조약까지』(까치, 1995)

주석

  • 주1

    : 정치나 군사의 모든 일을 통솔하고 감독함.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 주2

    : 일본의 정치가(1841~1909). 막부 정권 타도에 앞장섰으며, 총리대신과 추밀원 의장을 지냈다. 주한 특파 대사로서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으며, 1905년에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우리나라 국권 강탈을 준비하던 중, 1909년에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되었다. 우리말샘

  • 주3

    : 덕수궁 안에 있는 정전(正殿). 중화문(中和門)과 함께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말샘

  • 주4

    : 종묘의 안에 있는 사당. 조선 시대에, 왕과 왕비로서 종묘에 모실 수 없는 분의 신위를 모시던 곳으로, 태조의 사대조(四代祖)와 그 비(妃), 대가 끊어진 임금 및 그 비를 모셨으며, 1년에 두 번 정월과 7월에 대관(代官)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 태묘의 서북쪽에 있다. 우리나라 보물이다. 우리말샘

  • 주5

    : ‘상황’을 높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6

    : 서양 각국의 공사관이나 영사관. 우리말샘

  • 주7

    : 경운궁 외곽에 1901년경에 건립된 2층 양관 건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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