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제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순종(재위: 1874~1926)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완용 친일내각은 1907년(광무 11)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1907년(광무 11) 7월 16일, 내각회의에서 황제 폐위를 결정한 이완용과 송병준 등 친일내각은 고종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7월 18일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중명전에서 고종에게 압박을 가하여 마침내 황태자 대리의 조칙을 얻어 냈다. 7월 19일에는 서둘러 중화전에서 황태자 대리를 축하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환구단, 종묘, 영녕전, 경효전, 사직에 이를 알리는 고유제(告由祭)까지 지냈다. 고종은 단지 황태자 대리를 승인한 것이지만, 7월 21일에 태황제(太皇帝) 존봉도감 설치가 결정되는 등 고종의 퇴위가 기정사실이 되었다.
7월 22일에 친일내각의 대신들은 순종을 황태자 대리가 아닌 황제라고 부르기로 건의하였고, 총리대신 이완용은 연호의 개정을 발의하였다. 8월 2일에 내각에서 새 연호로 융희(隆熙)와 태시(太始)를 상주하였고, 이 가운데 융희로 결정되어 다음날부터 사용하였다.
같은 날 태황제의 칭호는 덕수(德壽)로 결정되었고 이어서 순종황제 즉위식이 강행되었다. 원래는 궁내부 장례원의 건의에 따라 경운궁 즉조당에서 즉위식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양관(洋館)인 돈덕전(惇德殿)으로 변경되면서 모든 의장물도 신식으로 마련하여 8월 27일, 순종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