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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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개념
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연차에 붙이는 칭호를 가리키는 왕실용어. 다년호 · 원호.
이칭
이칭
다년호, 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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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연차에 붙이는 칭호를 가리키는 왕실용어. 다년호 · 원호.
개설

다년호 또는 원호(元號)라고도 한다. 연호의 사용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일본, 월남 등에서도 사용하였다.

최초의 연호는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건원(建元)이다. 무제는 6년 혹은 4년마다 연호를 고쳤는데, 이후 이 기간은 무시되어 군주 일대에 몇 개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명나라·청나라 때는 1대에 한 연호[一世一元]를 사용하였다.

내용 및 변천

연호의 명칭에는 어떠한 사실을 상징하거나 이상을 표명하는 것이 가장 많으며, 불교·도교와 관계되는 것도 있고, 고전의 글귀를 취한 것도 있다. 그리고 연호는 원칙적으로 황제만이 사용하고, 제후왕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보이며, 금석문을 통해 확인된다. 광개토왕비에서 광개토왕이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건흥오년명금동석가삼존불(建興五年銘金銅釋迦三尊佛)·연가칠년명금동불상(延嘉七年銘金銅佛像)·영강칠년명주형광배(永康七年銘舟形光背)를 통해 고구려에서는 건흥·연가·영강 등의 연호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백제는 칠지도(七支刀)의 명문을 통해 태화(泰和)라는 연호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사적에서 확인되는 연호의 제정·사용은 신라 때부터이다. 즉, 법흥왕은 536년(법흥왕 23)에 독자적으로 연호를 세워 건원(建元)이라 하였다.

진흥왕 때 개국(開國)·대창(大昌)·홍제(鴻濟), 진평왕 때 건복(建福), 선덕왕 때 인평(仁平), 진덕왕 때 태화(太和)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822년(헌덕왕 14)에 웅주도독(熊州都督)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한 것도 주목된다.

발해에서는 고왕(高王: 大祚榮)이 연호를 세워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이후 역대 왕이 1개씩 독자적 연호를 제정, 사용했는데, 이는 명나라·청나라의 1세1원보다 앞서는 것이다.

후삼국시대의 궁예는 국호를 마진(摩震)이라 하고, 무태(武泰)·성책(聖冊) 두 개의 연호를 사용했고, 다시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고치고 수덕만세(水德萬歲)·정개(政開) 두 개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려의 태조는 천수(天授), 광종(光宗)은 광덕(光德)·준풍(峻豊)의 연호를 세워 주체성을 발휘하였다. 또, 1135년(인종 13)에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라고 하였다.

조선은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해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갑오경장 때 개국기원을 채택, 왕조의 개국연차를 계상해 1894년을 개국기원 503년으로 표기하였다.

그 뒤 을미사변을 계기로 정권을 장악한 개화당내각은 1세1원의 연호사용을 원칙으로 내세워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제정하였다. 대한제국의 수립으로 다시 광무(光武)라 고쳤으며, 순종이 즉위하면서 융희(隆熙)라는 연호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연호를 사용하다가 미군정기(1945∼1948)에는 서력기원을 사용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후에는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4호)에 의해 단군기원을 공용연호로 제정, 서기 1948년을 단기 4281년으로 사용하였다. 그 뒤 국제조류에 따라 1961년에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775호)을 공포, 서력기원을 공용연호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황

중국은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폐지되고, 지금은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연호는 군주의 치세연차적 의미와 왕조의 개국연차적 의미 등이 혼용되어오다가,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에는 연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단기 또는 서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역대에 제정, 사용했던 연호를 보면 〔표〕와 같다.

[표] 연호의 변천

연호 국호 왕명 기간
永樂 고구려 광개토대왕 391-412
建興 고구려
建元 신라 법흥왕 536∼550
開國 신라 진흥왕 551∼567
大昌 신라 진흥왕 568∼571
鴻濟 신라 진흥왕 572∼583
建福 신라 진평왕 584∼633
仁平 신라 선덕왕 634∼647
太和 신라 진덕왕 647∼650
天統 발해 고왕 699∼719
仁安 발해 무왕 719∼737
大興 발해 문왕 737∼793
中興 발해 성왕 794∼795
正曆 발해 강왕 795∼809
永德 발해 정왕 809∼813
朱雀 발해 희왕 813∼818
太始 발해 간왕 818
建興 발해 선왕 818∼830
咸和 발해 이진 830∼858
慶雲 장안 김헌창 822
武泰 마진 궁예 904∼905
聖冊 마진 궁예 905∼910
水德萬歲 태봉 궁예 911∼913
政開 태봉 궁예 914∼917
天授 고려 태조 918∼933
光德 고려 광종 950∼951
峻豊 고려 광종 960∼963
天開 대위 묘청 1135
建陽 조선 고종 1896∼1897
光武 대한제국 고종 1897∼1907
隆熙 대한제국 순종 1907∼1910
西曆紀元 미군정기
檀君紀元 대한민국 1948∼1961
西曆紀元 대한민국 1961∼현재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종실록(高宗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동사연표(東史年表)』(어윤적)
『한국사연표』(진단학회, 을유문화사, 1959)
「朝鮮의 年號와 紀年」(藤田亮策,『東洋學報』41卷 2·3號, 1958)
집필자
민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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