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제정된 연호이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러시아 공사관에 1년 여를 머물다가 1897년 2월 20일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근대적 주권국가로서 대한제국 선포를 준비하였다.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2일에는 을미사변 이후 김홍집 내각 시기에 내린 1895년 11월 15일자 조령(詔令)과 조칙(詔勅)을 취소하는 조치를 내렸다. 즉 태양력 사용과 함께 새 연호를 제정한다는 조칙과 단발령을 취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김홍집 내각 당시에 정한 건양(建陽)을 폐지되고 새 연호가 제정되었다. 1897년 8월 14일, 의정부 의정 심순택(沈舜澤) 등은 새 연호로 ‘광무(光武)’와 ‘경덕(慶德)’을 올려 이 중 ‘광무’로 재가를 받았다.
1897년 8월 15일에는 개국 506년, 즉 1897년을 광무 원년으로 하고, 8월 16일부터 사용한다는 조령이 내려졌다. 1897년 8월 16일에 환구단, 사직단, 종묘, 영녕전, 경모궁에서 새 연호 제정에 관한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경운궁 즉조당에서 축하 의식을 가지는 한편, 사면을 행하는 조령을 내렸다.
이어서 1897년 10월 11일에는 새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다음날인 10월 12일에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10월 13일에는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이 해를 광무 원년으로 삼는다는 반조문(頒詔文)를 반포하였다. 광무 연호는 일제와 친일 내각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키면서 폐지되었다. 즉 순종 황제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