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모전(景慕殿)이라고도 한다. 본래 1764년(영조 40) 봄에 서울 북부 순화방(順化坊 : 현재 종로구 창성동)에 처음 세웠던 것을 그 해 여름에 동부 숭교방(崇敎坊 : 현재 종로구 연건동서울대학교병원내)에 옮겨 수은묘(垂恩廟)라 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개축하기로 결정하고, 그 해 4월에 공역을 시작하여 8월에 완공, 경모궁이라 하고 정조가 현판글씨를 썼다. 그 해 9월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 서호수(徐浩修)의 요청에 의해 경모궁 악기도감(樂器都監)을 설치하고 김한기(金漢耆)·정상순(鄭尙淳)을 악기도감제조로 삼아 다음해 경모궁 악기를 완성하였다.
1780년 궁의 외장(外墻)을 쌓았고, 1784년 궁의 이름을 경모원(景慕園)으로 고쳤다가 1794년 다시 경모궁으로 확정하였다. 1817년(순조 17) 궁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였으며 이에 공헌한 도제조 이하 관원에게 시상하였고 감동당상(監董堂上) 박종경(朴宗慶)을 보국(輔國)으로, 조덕윤(趙德潤)·이희갑(李羲甲)을 정헌(正憲)으로 승진시켰다.
관원으로는 도제조·제조 각 1인과, 영(令, 종5품) 3인을 두되 1인은 문관으로 뽑도록 하였고, 뒤에 2인을 증원하여 음관(蔭官)으로 보직하였으며, 그외 직장(直長, 종7품)과 봉사(奉事, 종8품) 1인 등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1839년(헌종 5) 화재로 소진되자 그때 입직관(入直官) 박효문(朴孝聞), 수문장(守門將) 이인구(李麟九)는 체포되어 처형되고 제조 김이재(金履載)는 불칙죄(不飭罪)로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