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중부 남계방(南溪坊 : 속칭 楸洞) 에 위치하며, 태종도 이 곳에서 살았는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경덕궁이라 하였다.
태종은 중신들과 상의하여 궁을 증설하였으며, 1418년(태종 18) 4월에 새 누각을 준공하였고, 같은 해 7월에 또 북량정(北凉亭)을 신축하였다. 정종이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다시 도읍을 개성으로 옮긴 뒤 태종이 즉위하자 본궁이 협소해서 위사(衛士)들이 노숙을 하는 형편이라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태종이 다시 한양으로 환도한 뒤에도 후대왕들이 구도(舊都)를 순행하거나 제릉(齊陵 : 태조비 神懿王后 韓氏의 능)과 후릉(厚陵 : 정종과 그의 비 定安王后 金氏의 능)을 참배할 때면 이 곳에서 묵었다.
그 밖에는 늘 비어 있었으며 중종 때 대대적인 수리계획을 세우고 29칸을 증축하려 하였으나, 풍년이 들 때 시행하는 것이 좋다는 중신들의 건의로 보류시켰다. 별제(別提) 2인을 두어 지키게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그 옛터만 남아 있다. 경덕궁 앞으로는 부조현(不朝峴)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괘관현(掛冠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