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는 후침(後寢) 5칸, 전전(前殿) 3칸이며, 각각 감실(龕室)을 두었다. 조선태조의 비인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를 봉안하던 사당으로 1396년(태조 5)에 건립하여 처음에는 인소전(仁昭殿)이라 불렀다.
1398년 무인란(戊寅亂)으로 인하여 태조가 왕위를 버리고 정종이 즉위하여 그해 11월에 모비(母妃 : 태조비)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숭(追崇)하고 그 영정을 별전(別殿)에 봉안하였다.
정종이 개성으로 환도하였을 때에는 이 묘전의 영전을 개성 광명사(廣明寺)에 옮겨 모셨고, 1405년(태종 5)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자 다시 경복궁 옛 세자궁으로 봉안하였다가 이듬해 창덕궁 북쪽에 신전(新殿)을 세워 이곳으로 옮겼다.
1408년에 문소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태조가 죽은 다음에 그의 영정도 이곳에 함께 봉안하였다. 세종은 1432년에 선공감제조(繕工監提調) 안순(安純), 예조판서 신상(申商), 풍수지리가 이양달(李陽達) 등에게 명령하여 경복궁 안에 새로 문소전을 건립하고, 이듬해 광효전(廣孝殿)에 봉안했던 부왕 태종과 모후의 위패를 모아서 합사(合祀)하였다.
1454년(단종 2) 명나라에서 『송사(宋史)』를 보내오자 이곳에 가져다 보고하고 하례를 받았다. 관원은 도제조 2인, 제조 2인, 참봉 2인을 두었다. 조선 중엽에 이르러 폐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