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가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한 후, 그 해 10월 복위되어 국장(國葬)을 치르면서 설치되었다. 장소는 경운궁(慶運宮 : 德壽宮) 문경전(文慶殿)이었는데, 경효전으로 개칭하였다.
1897년홍릉(洪陵)에 안장되고, 1921년 고종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부묘(祔廟)될 때까지 경효전에서 상례·제례의 모든 의식이 행하여졌다. 1908년 11월 경효전은 중화전(中和殿)으로 잠시 옮겨지기도 하였다.
경효전의 모든 의식을 담당하고, 그에 따른 사무관장을 위하여 제조(提調)·영(令)·사승(祀丞) 등의 정규관원을 두었고, 상례·제례에 따르는 행사 때 많은 임시관원을 차출, 임명하기도 했다.